들어가며
지난 7월 12일, 넥슨에서 주최하는 게임잼인 '재밌넥'에 참여했다. 나는 작년에 이어 2번째로 참가하는 재밌넥이었는데, 이번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2박 3일 동안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2024 넥슨 게임잼에 기획자로 참여한 후기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참여 목적
나는 작년 재밌넥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었다. 다만, 당시에 수상했던 건 기획의 실력보다는 개성 있는 아트와 탄탄한 개발의 조합으로 가능했던 결과였다. 이에 당시에 개발 과정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재밌넥에 참여해서 지난 1년 간의 성장을 확인하고자 했다.
이에 다음과 같이 간단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재밌넥에 지원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봤습니다.
오랜만의 공지입니다. 최근 4학년 1학기를 마치고(24년 06월 기준), 슬슬 취업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블로그 자체를 보여주기보다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만한 짧은 문서
memoria-aeon.tistory.com
게임잼 목표
작년 게임잼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한 기획자 분이 게임잼 전에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한 구상을 해오신 건데 나도 단순히 개성 있는 인디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 개발 목표를 정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고 과정 아래 나는 다음과 같이 3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첫 번째 목표는 HD-2D 느낌의 그래픽을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당시에 <Octopath Traveler II>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3D 배경에 2D 캐릭터를 얹고 각종 카메라 효과와 연출로 아트 품질을 강조한다면, 유저의 감성을 자극해서 더 깊은 몰입을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아트가 중요한 게임잼에서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두 번째 목표는 유저에게 자신의 컨셉 플레이가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작년부터 나는 나의 기획에 대해 고민하면서 결국 나는 유저가 자신의 컨셉을 발견 및 발현할 수 있기에 게임을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게임잼에서는 컨셉이 창발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자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세 번째 목표는 팝업 아트 느낌의 표현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전에 <Lost Ark>를 한창 열심히 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 쿠크세이튼이라는 군단장 맵을 보면서 감탄을 한 적이 있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연출이 아니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개발 과정에서 게임 외의 연출 방법을 활용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나도 이번 기회에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HD-2D 느낌과 잘 조합되기도 하고 말이다.
정리하자면 이번 게임잼에서는 팝업 아트 느낌으로 몽환적이고 기괴한 분위기를 구성해보고자 했다.


이렇게 가장 먼저 무엇을 목표로 개발할 지 결정해 봤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HD-2D 느낌의 그래픽을 활용한다.
2. 유저가 자신의 컨셉 플레이를 가능하게 설계한다.
3. 팝업 아트 느낌으로 몽환적이고 기괴한 느낌을 연출한다.
게임잼 준비
목표를 설정한 이후에는 작년처럼 게임잼 전까지 개성 있는 게임들 몇 가지를 플레이해 봤다.



음.. 이건 주제를 살짝 벗어난 이야기이기는 한데, 나는 게임 만드는 걸 좋아하는거지 플레이하는 것에 큰 관심은 없었다. 특별히 찾아서 하기보다는 그냥 레퍼런스 쌓기용으로 간간이 플레이하는 정도였는데, 이 때문에 게임을 깊게 즐기지 못하는 내가 기획자가 되는 게 맞는 건지 고민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웬 걸 지난 1년 간 혼자 게임을 개발해보기도 하고, 기획적인 아이디어와 체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유저 경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이때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오랜만에 플레이해보는 게임들 하나하나가 너무 생생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이전까지는 무대 밖에서 연주를 듣는 관객이었다면 이제는 지휘자 바로 앞에서 함께 심취하는 느낌이다. 플레이하면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과정, 그 기대가 들어 맞았을 때의 쾌감, 들어맞지 않았을 때의 의문과 그 의문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답으로 관통될 때 느낄 수 있는 일관성 등, 게임이 왜 상업 예술인지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여전히 유저의 관점보다는 창작자의 관점에 가깝기는 한데, 유저와 창작자는 모두 본질적으로 향유자이기도 하지 않나. 경험의 측면에서 무엇을 느꼈고 왜 좋았는지 말할 수 있다면 굳이 분리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갑작스럽지만 이번 게임잼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했던 것 중 하나라 이렇게 적어봤다.
다음으로는 'URP 셰이더 그래프 책'을 읽어보면서 따라해봤다. 원래 셰이더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롤이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험을 직조할 수 있는 디자이너이기에 이번 기회에 한번 시도해 봤다.
대마왕의 유니티 URP 셰이더 그래프 스타트업 | 정종필 - 교보문고
대마왕의 유니티 URP 셰이더 그래프 스타트업 | 게임개발 분야 베스트셀러 [유니티 쉐이더 스타트업]의 후속편!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된 게임개발 베스트셀러 [유니티 쉐이더 스타트업]의 후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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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순하게 사용하는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어서 큰 부담도 없이 배울 수 있었고, 배운 내용은 게임잼에서 셰이더를 구성하는데 잘 활용할 수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그냥 물품 준비인데.. 작년에 너무 불편하게 잤던 경험이 있어서 저렴한 침낭을 하나 주문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수면의 질이 달라져서 잘 준비했구나 싶었다. (근데 3일 동안 8시간도 못 잠 ㅋㅋ)
이렇게 준비한 것들에 대해 적어봤는데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개성 있는 게임들을 플레이했다.
2. URP 셰이더 그래프 책을 읽으며 따라 했다.
3. 침낭을 준비했다.
오리엔테이션 & 기획 과정
오리엔테이션 장소에 도착해서 이전처럼 뻘쭘하게 기다리는데, 감사하게도 작년에 <시럽시럽 메이플시럽>을 같이 개발했던 아트 분이 말을 걸어주셔서 심심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아트 분께서 기다리면서 만들고 있는 졸업 작품을 보여주셨는데 퀄리티가 미쳐서 다시 한번 세상에는 천재가 많다는 걸 느꼈다😅.
이후에는 주변에 계셨던 Bridge 아트 분과 이야기하다 보니 OT가 시작됐다. OT에는 <MapleStory World>의 신민석 총괄 디렉터님이 오셨는데 간략하게 메이플스토리 월드에 대해 소개해주신 뒤 주제를 발표해 주셨다.


주제는 '섬(아일랜드)'이었는데 처음에 주제를 받고 나서는 그냥 별생각 없이 목표에 맞게 게임을 디자인했다.
처음에는 '섬'이 고립되어 있고, 각각 고유한 특색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스테이지로 기능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에 몽환적이고 기괴한 느낌을 더하려고 하니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목표로 했던 컨셉 플레이와의 연결점도 잘 생각나지 않았고 말이다.
그래서 섬이라는 개념을 한번 꼬아서 갖다 붙여보기로 했다. 여기서 섬의 '고립', '고유한 이야기'라는 부분에 꽂혀서 이를 책으로 표현해 보자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아래와 같은 기획이 나왔다.


이 기획을 처음 뽑았을 때는 굉장히 만족했다. 메카닉도 상충하는 부분 없이 잘 배치되어 있고, 계속 컨텐츠를 덧대며 확장할 수 있는 구조이며, 무엇보다 목표를 충실히 만족하는 기획이었기에 만족스러웠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기획은 분명 좋은 기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게임잼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기획을 다 정리하고 난 이후에는 종종 다른 분들이 오셔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들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걱정을 표했다.
이거.. 게임잼에서 다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게 섬이랑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아요.
이런 의견을 듣고 나서 나의 심정은..


솔직히 완성 부분에서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덱 컨텐츠 볼륨을 키우지 않고 몇 가지 시너지만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덱 빌딩 느낌을 낼 수 있기도 하고, 크게 복잡한 시스템은 없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말 문제가 된다면 일부 시스템을 잘라낼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가장 문제라고 느꼈던 부분은 내 스스로 주제와의 연관성을 끊어버렸던 것이다. 게임잼 이전에 목표로 했던 것에 집중한 나머지 주제를 중심으로 사고했어야 했는데, 목표를 중심으로 사고해 버렸다. 어떻게든 섬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성을 챙겨서 노골적으로 어필해도 모자랄 판에 은유하겠답시고 섬을 없애버렸다.
그렇다고, 수정하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이대로 다음 자료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게.. 그리고, 발표를 못하는 문제를 고친 줄 알았는데 고치지 못했다. 그냥 이전에 잘 됐던 케이스들은 발표 문제를 고친 게 아니라 그냥 문제를 무시할 만큼 확신을 갖고 있어서 잘 된 것이었다..
아무튼 어려운 난이도, 주제와 동떨어진 컨셉,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발표임에도 관심을 갖고 찾아와 주신 분이 계셨고 다행히 팀을 잘 구성할 수 있었다.
작년에 팀을 모집할 때 많은 분들과 이야기해보지 못한 게 아쉬워서 지원해 주셨을 때 바로 확정 짓기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결과적으로 좋은 팀을 구성할 수 있었지만 혹시 이 글을 보게 될 미래의 기획자가 있다면 바로 모집하는 걸 추천한다.
이게 바로바로 모집을 하지 않으면 다른 팀으로 가게 되셔서 꽂힌 순간 팀이 되는 게 백배 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기획 : 본인
프로그래머 1 : 약 10년 간 인디 게임을 개발하셨고, 로그라이크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는 프로그래머 분
프로그래머 2 : 체계적으로 데이터 관리를 할 줄 아시는 프로그래머 분
아트 1 : 기술 활용을 잘하는 3D 모델러 아트 분
아트 2 : 기괴한 느낌의 크리처 디자인과 펜화가 인상적이었던 2D 아트 분
개발 과정 : 어떤 문제를 극복했는가?
개발 과정에서는 가장 먼저 극복했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작년 게임잼에서의 내가 기획 과정에서 이상적이었고 개발 과정에서 처참했다면, 올해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이번 게임잼에서의 나는 나름 효과적인 요청과 피드백을 드렸다고 생각한다. 팀원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말이다 😁😁.
나는 개발 과정에서 작년에 인지했던 문제를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당시 인지했던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제 1. 나는 컨디션 조절을 하지 못했다.
문제 2. 나는 불필요하게 눈치를 봤다.
문제 3. 피드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문제 4. 소외된다고 착각했다.
문제 5. 내가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음.. 다시 적고 보니까 피해망상 걸린 어린애 같은데.. 묻어둘 건 묻어두고, 얘기할 건 얘기해보자 😅. 솔직히 문제 2, 4, 5는 그냥 예민한 기질에 더해 협업 경험치가 부족해서 발생했던 일이라 한때의 흑역사로 생각하고 묻어두면 될 것 같다.
그럼 컨디션 조절과 피드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가장 먼저 컨디션 조절인데 일단 작년에 문제를 느낀 이후, 복싱이며 달리기며 이것저것 해보다가 나한테 맞는 방법을 찾기도 했고, 게임잼 일주일 전부터 조금씩 강도를 높이며 준비해서 체력 자체는 굉장히 좋은 상태로 게임잼에 참가했다. (그래봤자 돌고 돌아 유산소지만 😏😏)
여기에 더해 작업 중간중간 살짝 피로하거나 답답하면 10분 정도 산책을 가거나 강당 구석에서 명상을 하면서 정신을 환기하니 아예 문제가 없었다. 3일 동안 7-8시간 남짓 잤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완전 극복!
다음은 피드백이다. 우유부단했던 과거에는 어떤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받으면 내 생각 없이 그냥 '좋아요'만 연발했다. 내가 이랬던 이유는 중심이 모호한 기획을 하여 내 생각보다 퀄리티를 우선해 따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지난 1년 간 우연한 기회로 나의 기획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내 취향을 확인했고, 이에 더해 기획을 머릿속에 구체화하는 습관도 들여놨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반대로 퀄리티가 좋더라도 내 생각과 다르면 '이 작업이 왜 필요하고,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이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에 진행했던 <Lost in Hope> 프로젝트의 목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함과 방향성을 지속시키는 결정'을 이제 와서야 달성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쯤에서 단락을 접고 극복한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컨디션 조절을 할 수 있게 됐다.
2. 제대로 된 피드백을 할 수 있게 됐다.






개발 과정 : 어떤 작업을 했는가?
이번에는 따로 기획 문서를 만들지 않았다.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실제로 작업에서 참고할 수 있는 기획서를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잘 읽게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플로우 차트를 대충 작성하다가 프로그래머 분들한테 말씀드리고, 그냥 커뮤니케이션으로 최대한 처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필요한 기능과 리소스가 있다면 최대한 설명을 하고, 구인 게시판에 올렸던 것처럼 노트에 쪽지 느낌으로 전달드려 작업을 요청드렸다.


기획은 이렇게만 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드백 위주로 작업을 진행했다. 명색이 기획자인데 기획 얘기를 여기서 마치기 애매하니 게임의 핵심과 코어 메카닉만 살짝 정리해 보겠다.
테마 : 설계와 폭발
핵심 포인트 : 설계 시점 동안 적의 공격을 버티며, 손해와 이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느끼도록 구성한다.
목표 1. 컨셉 플레이를 할 수 있게 구성
목표 2. 몽환적이고 기괴한 분위기 전달
Mechanic 1. 기술들이 효과를 매개로 2~5개의 연계성을 갖는다.
의도 : 효과는 유저가 시너지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점으로 기능하며, 유저는 효과로부터 여러 가지 시너지를 상상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라이트 유저가 타겟이기에 효과 키워드만 보고 기술을 모아도 시너지가 만들어지도록 구성)
포인트 : 연계성은 2개에서 5개로 제한한다. 너무 적으면 상상할 경우의 수가 줄어들어 빌드가 단순해지고, 너무 많으면 유저가 복잡함에 압도당한다. 기술은 작은 컨셉으로만 기능하고, 유저가 이를 모아 하나의 거대한 컨셉을 구성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Mechanic 2. 적 처치 시 AP(행동력)가 회복된다.
의도 : 초반 설계 이후, 한 번의 시너지 폭발로 적을 처치했다면 AP가 회복되게 하여 다음 설계 과정을 단축한다. 이를 통해, 유저는 연쇄적으로 빠르게 폭발(재미)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포인트 : AP 회복 메카닉과 결합하여 설계 과정에서 유저가 AP에 대한 결핍을 느끼도록 구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적 처치 시 쾌감을 강화할 수 있다.
Mechanic 3. 고양이 조력자는 일정 턴마다 버프를 부여한다.
의도 : 전투의 변수이자 설계와 폭발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한 메카닉이다. 고양이 버프에 맞춰 시너지를 폭발시키면 폭발력을 배가할 수 있기에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설계와 폭발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전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폭발 시의 쾌감 또한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포인트 : 고양이 조력자가 주는 버프는 지속형이 아닌 딱 한 턴만 데미지 강화, AP 회복 등의 효과를 받도록 한다.
이 외에 적 처치 시 폭발 쾌감을 강화하는 임팩트 카메라와 4가지 기술의 단조로움을 중화할 적 패턴 등의 몇 가지 코어 메카닉과 보조 메카닉으로 게임을 구성했다.
이런 방법론은 MDA 프레임워크 기반에 결핍과 충족 이론을 비롯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덧대어 만들어본 것인데, 이번 기회에 실제로 테스트해 보면서 내 사고 모델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어 뜻깊었다.
이전에는 기획을 할 때 '이게 재미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이런 고민이 영원한 기획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런 문제가 재미의 유무에서 '얼마나 재미있는가?'로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기획을 했고, 이후에는 간단하게 포스트 프로세싱과 라이트, 게임잼 준비 기간 때 익힌 URP를 활용해 셰이더를 만져보며 내가 원하던 HD-2D 스타일을 구성해 봤다.

어떤 식으로 연출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포스트 프로세싱 부분은 진짜 '딸깍'이라 빠르게 소개만 하겠다 😉)








이렇게 포스트 프로세싱과 라이트, 셰이더를 다루면서 좋은 아트가 더 좋게 보일 수 있게 구성해 봤다. (FOV도 적용하려고 했었는데 빌드 버전에서는 깜빡하고 적용하지 못했다.)
여기서 셰이더 부분을 조금 더 설명하자면 구름 그림자 같은 경우는 아트 분께 요청해서 아래와 같은 구름 모양 이미지를 받은 후, time 값에 따라 offset이 달라지도록 하여 흘러가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걸 레벨 위에 배치해서 구름이 흘러가는 그림자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림자가 지도록 배치하는 게 번거로웠는데, 뭔가 찾아보면 라이트 자체에서 저런 느낌을 낼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능력 및 시간 부족으로 이렇게만 연출했다.
다음은 만들고 사용하지 못한 기능인데 바로 마법진과 사망 시 디졸브 효과를 위한 셰이더다.
가장 먼저 마법진의 경우,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플레이어 위에 활성화해서 기술 종류에 따라 다른 색, 다른 크기, 다른 밝기로 보여주어 몇 가지 리소스를 재사용해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아래와 같이 만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 부족으로 적용하지 못했다.


사망 시 디졸브 효과는 몬스터들이 책에서 나왔다는 설정이 있는 만큼 처치됐을 때 불타는 듯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아래와 같이 destroy 여부를 체크하게 만들고, true라면 time 값에 따라 sine의 그래프 형태로 noise 이미지의 alpha 값이 곱해지도록 구성했다.


그런데, 이건 그냥 내 능력 부족으로 적용하지 못했다. 우선 만들고 적용해 보니까 모든 캐릭터에 동시에 적용돼서 1차로 문제가 있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어떻게 인스턴스화하는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time 값에 따라 디졸브 되기에 destroy가 true가 되는 순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해결 자체는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데 당시에는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 지었다.
혹자는 '이런 식으로 효과를 남발하면 무거워지지 않냐?'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PC 플랫폼을 타겟으로 하고 있고, 게임 규모 자체도 그렇게 크지는 않아서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단락을 마치고 내가 했던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게임 디자인
2. 연출 (포스트 프로세싱, 라이트, 셰이더)
3. 피드백
시연과 최종 발표
개발 시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시연을 했다. 모든 기능이 다 구현된 건 아니지만, 결과물이 정말 괜찮게 나와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게임은 많이 플레이되지 못했다. 확실히 덱 빌딩이라는 장르 자체가 지닌 진입 장벽이 있으니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받아들였지만 약간 속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이때까지 주제와 장르 설정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는데, 이 때문에 우리 팀이 2박 3일 동안 열심히 만든 결과물이 조명받지 못하는 것 같아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우울감이 목구멍을 매웠다.
그래서 그냥 생각을 환기할 겸 다른 게임들을 살펴보면서 밥이나 먹었다.

그리고, 발표를 하게 됐는데 너무 처참하게 망해버려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래처럼 gif로 메카닉과 비주얼 컨셉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그냥 말 자체에도 힘도 없었고, 보여주고자 하는 바도 제대로 못 보여줬으며, 무엇보다 질의응답에 대한 답변이 최악이었다.
당시에 섬을 책에 비유하면서 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카펫을 파도처럼, 촛불을 등대처럼 연출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심사위원분께서 그 외에 섬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여쭤보셨다. 여기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강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도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고 말이다.


이렇게 찝찝하게 발표를 마치고 돌아오니, 와.. 오랜만에 자괴감이 세게 오더라.. 사실 나도 내가 준비하는 걸로 섬을 연상시키기는 어렵다는 걸 내심 인정하고 있었기에 제대로 발표하지 못한 것 같다.
애초에 내가 방향성 자체를 주제 중심으로 피워낸 게 아니라 따로 설정한 목표 중심으로 피워냈으니 시작부터 잘못된 기획이었다.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는 팀원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사과하고, 조용히 다른 팀 발표를 들었다. 습관처럼 인상 깊은 부분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러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이 과정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기획자라면 연출에 신경 쓰기 이전에 기획적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렸어야 했어.
팀원의 노력을 생각했으면 나는 이 자리에서만큼은 최고가 됐어야 됐는데.
그냥 뻔뻔하게 섬으로 비유했다고 밀고 나가는 게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나는 왜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지?
기록.. 이런 게 정말 의미가 있었나?
나에 대한 신뢰보다는 결과가 중요했는데 진작에 제안해 볼걸..
사실 팀 모집 이후, 첫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섬이라는 키워드를 연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고, <Pirates Outlaws> 느낌으로 도서관을 바다로, 마법사를 해적 선장으로, 몬스터를 다른 해적단으로 설정해서 약탈하러 다니는 컨셉으로 변경을 고려했다.
근데 이걸 말로 꺼내지는 않았는데, 기존 제안을 듣고 와서 이제 막 팀이 결성됐는데 갑자기 핵심 컨셉 자체를 바꿔버리자고 말을 하면 시작부터 분위기를 망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뢰보다 결과물이 중요하니 그냥 말이라도 꺼내서 논의해 보는 게 맞았는데, 뭐가 그리 겁났는지 그러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

결과
결과는 당연하게도 수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그냥 명명백백하게 내가 방향성을 잘못 잡았던 게 문제라 팀원들한테 너무 미안하더라.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면 이번 실패를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기억할 수 있게 바꿔보자.
개인적으로 영원한 실패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수치스럽고, 부끄럽다면 그만큼 더 열심히 해 좋은 결과를 내서 훗날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
그래서, 제안했다.
저희.. 계속 개발해 볼래요?
결과는..?




감사하게도 모두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셔서 9월 이전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팀의 게임은 주제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 재미도 있었고, 결과물도 잘 나왔으니까 말이다.
위에는 기획만 적어두기는 했는데 개발 쪽에서는 구조 정리하면서 새로운 기능들을 개발해주고 계시고, 아트 쪽에서는 몬스터와 캐릭터 이미지, 서재 모델링을 작업해주시고 있다.
아래에 게임잼 빌드본 플레이 영상을 올리면서 이번 단락을 마무리 짓겠다. 오랜만의 팀 프로젝트인데 한번 증명해 봐야겠다. (애초에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마치며
이번 게임잼은 수치스럽고 내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느낀 게임잼이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그 부족함을 직면할 수 있었기에 가치 있던 게임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 얻어맞았으니 위기감을 느끼고 뭐라도 하게 되지 않겠나.



원래는 여유가 생겼을 때 글을 쓰려고 했는데, 다들 팀원 분들 작업 속도가 빠르시기도 하고 할 일이 계속 생겨서 이러다가는 글을 못 쓸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후기 글을 작성해 봤다.
부끄러우니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평소처럼 선곡 하나 하고 사라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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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난 7월 12일, 넥슨에서 주최하는 게임잼인 '재밌넥'에 참여했다. 나는 작년에 이어 2번째로 참가하는 재밌넥이었는데, 이번에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2박 3일 동안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2024 넥슨 게임잼에 기획자로 참여한 후기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참여 목적
나는 작년 재밌넥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었다. 다만, 당시에 수상했던 건 기획의 실력보다는 개성 있는 아트와 탄탄한 개발의 조합으로 가능했던 결과였다. 이에 당시에 개발 과정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재밌넥에 참여해서 지난 1년 간의 성장을 확인하고자 했다.
이에 다음과 같이 간단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재밌넥에 지원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봤습니다.
오랜만의 공지입니다. 최근 4학년 1학기를 마치고(24년 06월 기준), 슬슬 취업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블로그 자체를 보여주기보다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만한 짧은 문서
memoria-aeon.tistory.com
게임잼 목표
작년 게임잼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한 기획자 분이 게임잼 전에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한 구상을 해오신 건데 나도 단순히 개성 있는 인디 게임들을 플레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 개발 목표를 정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고 과정 아래 나는 다음과 같이 3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첫 번째 목표는 HD-2D 느낌의 그래픽을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당시에 <Octopath Traveler II>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3D 배경에 2D 캐릭터를 얹고 각종 카메라 효과와 연출로 아트 품질을 강조한다면, 유저의 감성을 자극해서 더 깊은 몰입을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아트가 중요한 게임잼에서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두 번째 목표는 유저에게 자신의 컨셉 플레이가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작년부터 나는 나의 기획에 대해 고민하면서 결국 나는 유저가 자신의 컨셉을 발견 및 발현할 수 있기에 게임을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게임잼에서는 컨셉이 창발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자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세 번째 목표는 팝업 아트 느낌의 표현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전에 <Lost Ark>를 한창 열심히 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 쿠크세이튼이라는 군단장 맵을 보면서 감탄을 한 적이 있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연출이 아니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개발 과정에서 게임 외의 연출 방법을 활용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나도 이번 기회에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HD-2D 느낌과 잘 조합되기도 하고 말이다.
정리하자면 이번 게임잼에서는 팝업 아트 느낌으로 몽환적이고 기괴한 분위기를 구성해보고자 했다.


이렇게 가장 먼저 무엇을 목표로 개발할 지 결정해 봤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HD-2D 느낌의 그래픽을 활용한다.
2. 유저가 자신의 컨셉 플레이를 가능하게 설계한다.
3. 팝업 아트 느낌으로 몽환적이고 기괴한 느낌을 연출한다.
게임잼 준비
목표를 설정한 이후에는 작년처럼 게임잼 전까지 개성 있는 게임들 몇 가지를 플레이해 봤다.



음.. 이건 주제를 살짝 벗어난 이야기이기는 한데, 나는 게임 만드는 걸 좋아하는거지 플레이하는 것에 큰 관심은 없었다. 특별히 찾아서 하기보다는 그냥 레퍼런스 쌓기용으로 간간이 플레이하는 정도였는데, 이 때문에 게임을 깊게 즐기지 못하는 내가 기획자가 되는 게 맞는 건지 고민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웬 걸 지난 1년 간 혼자 게임을 개발해보기도 하고, 기획적인 아이디어와 체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유저 경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이때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오랜만에 플레이해보는 게임들 하나하나가 너무 생생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이전까지는 무대 밖에서 연주를 듣는 관객이었다면 이제는 지휘자 바로 앞에서 함께 심취하는 느낌이다. 플레이하면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과정, 그 기대가 들어 맞았을 때의 쾌감, 들어맞지 않았을 때의 의문과 그 의문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답으로 관통될 때 느낄 수 있는 일관성 등, 게임이 왜 상업 예술인지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여전히 유저의 관점보다는 창작자의 관점에 가깝기는 한데, 유저와 창작자는 모두 본질적으로 향유자이기도 하지 않나. 경험의 측면에서 무엇을 느꼈고 왜 좋았는지 말할 수 있다면 굳이 분리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갑작스럽지만 이번 게임잼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했던 것 중 하나라 이렇게 적어봤다.
다음으로는 'URP 셰이더 그래프 책'을 읽어보면서 따라해봤다. 원래 셰이더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롤이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험을 직조할 수 있는 디자이너이기에 이번 기회에 한번 시도해 봤다.
대마왕의 유니티 URP 셰이더 그래프 스타트업 | 정종필 - 교보문고
대마왕의 유니티 URP 셰이더 그래프 스타트업 | 게임개발 분야 베스트셀러 [유니티 쉐이더 스타트업]의 후속편!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된 게임개발 베스트셀러 [유니티 쉐이더 스타트업]의 후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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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단순하게 사용하는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어서 큰 부담도 없이 배울 수 있었고, 배운 내용은 게임잼에서 셰이더를 구성하는데 잘 활용할 수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그냥 물품 준비인데.. 작년에 너무 불편하게 잤던 경험이 있어서 저렴한 침낭을 하나 주문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수면의 질이 달라져서 잘 준비했구나 싶었다. (근데 3일 동안 8시간도 못 잠 ㅋㅋ)
이렇게 준비한 것들에 대해 적어봤는데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개성 있는 게임들을 플레이했다.
2. URP 셰이더 그래프 책을 읽으며 따라 했다.
3. 침낭을 준비했다.
오리엔테이션 & 기획 과정
오리엔테이션 장소에 도착해서 이전처럼 뻘쭘하게 기다리는데, 감사하게도 작년에 <시럽시럽 메이플시럽>을 같이 개발했던 아트 분이 말을 걸어주셔서 심심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아트 분께서 기다리면서 만들고 있는 졸업 작품을 보여주셨는데 퀄리티가 미쳐서 다시 한번 세상에는 천재가 많다는 걸 느꼈다😅.
이후에는 주변에 계셨던 Bridge 아트 분과 이야기하다 보니 OT가 시작됐다. OT에는 <MapleStory World>의 신민석 총괄 디렉터님이 오셨는데 간략하게 메이플스토리 월드에 대해 소개해주신 뒤 주제를 발표해 주셨다.


주제는 '섬(아일랜드)'이었는데 처음에 주제를 받고 나서는 그냥 별생각 없이 목표에 맞게 게임을 디자인했다.
처음에는 '섬'이 고립되어 있고, 각각 고유한 특색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스테이지로 기능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에 몽환적이고 기괴한 느낌을 더하려고 하니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목표로 했던 컨셉 플레이와의 연결점도 잘 생각나지 않았고 말이다.
그래서 섬이라는 개념을 한번 꼬아서 갖다 붙여보기로 했다. 여기서 섬의 '고립', '고유한 이야기'라는 부분에 꽂혀서 이를 책으로 표현해 보자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아래와 같은 기획이 나왔다.


이 기획을 처음 뽑았을 때는 굉장히 만족했다. 메카닉도 상충하는 부분 없이 잘 배치되어 있고, 계속 컨텐츠를 덧대며 확장할 수 있는 구조이며, 무엇보다 목표를 충실히 만족하는 기획이었기에 만족스러웠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기획은 분명 좋은 기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게임잼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기획을 다 정리하고 난 이후에는 종종 다른 분들이 오셔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분들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걱정을 표했다.
이거.. 게임잼에서 다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게 섬이랑 어떤 관련이 있는 건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아요.
이런 의견을 듣고 나서 나의 심정은..


솔직히 완성 부분에서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덱 컨텐츠 볼륨을 키우지 않고 몇 가지 시너지만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덱 빌딩 느낌을 낼 수 있기도 하고, 크게 복잡한 시스템은 없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말 문제가 된다면 일부 시스템을 잘라낼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가장 문제라고 느꼈던 부분은 내 스스로 주제와의 연관성을 끊어버렸던 것이다. 게임잼 이전에 목표로 했던 것에 집중한 나머지 주제를 중심으로 사고했어야 했는데, 목표를 중심으로 사고해 버렸다. 어떻게든 섬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성을 챙겨서 노골적으로 어필해도 모자랄 판에 은유하겠답시고 섬을 없애버렸다.
그렇다고, 수정하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이대로 다음 자료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게.. 그리고, 발표를 못하는 문제를 고친 줄 알았는데 고치지 못했다. 그냥 이전에 잘 됐던 케이스들은 발표 문제를 고친 게 아니라 그냥 문제를 무시할 만큼 확신을 갖고 있어서 잘 된 것이었다..
아무튼 어려운 난이도, 주제와 동떨어진 컨셉,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발표임에도 관심을 갖고 찾아와 주신 분이 계셨고 다행히 팀을 잘 구성할 수 있었다.
작년에 팀을 모집할 때 많은 분들과 이야기해보지 못한 게 아쉬워서 지원해 주셨을 때 바로 확정 짓기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결과적으로 좋은 팀을 구성할 수 있었지만 혹시 이 글을 보게 될 미래의 기획자가 있다면 바로 모집하는 걸 추천한다.
이게 바로바로 모집을 하지 않으면 다른 팀으로 가게 되셔서 꽂힌 순간 팀이 되는 게 백배 이롭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은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기획 : 본인
프로그래머 1 : 약 10년 간 인디 게임을 개발하셨고, 로그라이크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는 프로그래머 분
프로그래머 2 : 체계적으로 데이터 관리를 할 줄 아시는 프로그래머 분
아트 1 : 기술 활용을 잘하는 3D 모델러 아트 분
아트 2 : 기괴한 느낌의 크리처 디자인과 펜화가 인상적이었던 2D 아트 분
개발 과정 : 어떤 문제를 극복했는가?
개발 과정에서는 가장 먼저 극복했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작년 게임잼에서의 내가 기획 과정에서 이상적이었고 개발 과정에서 처참했다면, 올해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이번 게임잼에서의 나는 나름 효과적인 요청과 피드백을 드렸다고 생각한다. 팀원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말이다 😁😁.
나는 개발 과정에서 작년에 인지했던 문제를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당시 인지했던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제 1. 나는 컨디션 조절을 하지 못했다.
문제 2. 나는 불필요하게 눈치를 봤다.
문제 3. 피드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문제 4. 소외된다고 착각했다.
문제 5. 내가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음.. 다시 적고 보니까 피해망상 걸린 어린애 같은데.. 묻어둘 건 묻어두고, 얘기할 건 얘기해보자 😅. 솔직히 문제 2, 4, 5는 그냥 예민한 기질에 더해 협업 경험치가 부족해서 발생했던 일이라 한때의 흑역사로 생각하고 묻어두면 될 것 같다.
그럼 컨디션 조절과 피드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가장 먼저 컨디션 조절인데 일단 작년에 문제를 느낀 이후, 복싱이며 달리기며 이것저것 해보다가 나한테 맞는 방법을 찾기도 했고, 게임잼 일주일 전부터 조금씩 강도를 높이며 준비해서 체력 자체는 굉장히 좋은 상태로 게임잼에 참가했다. (그래봤자 돌고 돌아 유산소지만 😏😏)
여기에 더해 작업 중간중간 살짝 피로하거나 답답하면 10분 정도 산책을 가거나 강당 구석에서 명상을 하면서 정신을 환기하니 아예 문제가 없었다. 3일 동안 7-8시간 남짓 잤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완전 극복!
다음은 피드백이다. 우유부단했던 과거에는 어떤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받으면 내 생각 없이 그냥 '좋아요'만 연발했다. 내가 이랬던 이유는 중심이 모호한 기획을 하여 내 생각보다 퀄리티를 우선해 따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지난 1년 간 우연한 기회로 나의 기획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내 취향을 확인했고, 이에 더해 기획을 머릿속에 구체화하는 습관도 들여놨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반대로 퀄리티가 좋더라도 내 생각과 다르면 '이 작업이 왜 필요하고,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이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에 진행했던 <Lost in Hope> 프로젝트의 목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함과 방향성을 지속시키는 결정'을 이제 와서야 달성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쯤에서 단락을 접고 극복한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컨디션 조절을 할 수 있게 됐다.
2. 제대로 된 피드백을 할 수 있게 됐다.






개발 과정 : 어떤 작업을 했는가?
이번에는 따로 기획 문서를 만들지 않았다.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실제로 작업에서 참고할 수 있는 기획서를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잘 읽게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플로우 차트를 대충 작성하다가 프로그래머 분들한테 말씀드리고, 그냥 커뮤니케이션으로 최대한 처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필요한 기능과 리소스가 있다면 최대한 설명을 하고, 구인 게시판에 올렸던 것처럼 노트에 쪽지 느낌으로 전달드려 작업을 요청드렸다.


기획은 이렇게만 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드백 위주로 작업을 진행했다. 명색이 기획자인데 기획 얘기를 여기서 마치기 애매하니 게임의 핵심과 코어 메카닉만 살짝 정리해 보겠다.
테마 : 설계와 폭발
핵심 포인트 : 설계 시점 동안 적의 공격을 버티며, 손해와 이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느끼도록 구성한다.
목표 1. 컨셉 플레이를 할 수 있게 구성
목표 2. 몽환적이고 기괴한 분위기 전달
Mechanic 1. 기술들이 효과를 매개로 2~5개의 연계성을 갖는다.
의도 : 효과는 유저가 시너지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점으로 기능하며, 유저는 효과로부터 여러 가지 시너지를 상상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라이트 유저가 타겟이기에 효과 키워드만 보고 기술을 모아도 시너지가 만들어지도록 구성)
포인트 : 연계성은 2개에서 5개로 제한한다. 너무 적으면 상상할 경우의 수가 줄어들어 빌드가 단순해지고, 너무 많으면 유저가 복잡함에 압도당한다. 기술은 작은 컨셉으로만 기능하고, 유저가 이를 모아 하나의 거대한 컨셉을 구성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Mechanic 2. 적 처치 시 AP(행동력)가 회복된다.
의도 : 초반 설계 이후, 한 번의 시너지 폭발로 적을 처치했다면 AP가 회복되게 하여 다음 설계 과정을 단축한다. 이를 통해, 유저는 연쇄적으로 빠르게 폭발(재미)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포인트 : AP 회복 메카닉과 결합하여 설계 과정에서 유저가 AP에 대한 결핍을 느끼도록 구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적 처치 시 쾌감을 강화할 수 있다.
Mechanic 3. 고양이 조력자는 일정 턴마다 버프를 부여한다.
의도 : 전투의 변수이자 설계와 폭발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한 메카닉이다. 고양이 버프에 맞춰 시너지를 폭발시키면 폭발력을 배가할 수 있기에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설계와 폭발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전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폭발 시의 쾌감 또한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포인트 : 고양이 조력자가 주는 버프는 지속형이 아닌 딱 한 턴만 데미지 강화, AP 회복 등의 효과를 받도록 한다.
이 외에 적 처치 시 폭발 쾌감을 강화하는 임팩트 카메라와 4가지 기술의 단조로움을 중화할 적 패턴 등의 몇 가지 코어 메카닉과 보조 메카닉으로 게임을 구성했다.
이런 방법론은 MDA 프레임워크 기반에 결핍과 충족 이론을 비롯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덧대어 만들어본 것인데, 이번 기회에 실제로 테스트해 보면서 내 사고 모델이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어 뜻깊었다.
이전에는 기획을 할 때 '이게 재미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이런 고민이 영원한 기획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런 문제가 재미의 유무에서 '얼마나 재미있는가?'로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기획을 했고, 이후에는 간단하게 포스트 프로세싱과 라이트, 게임잼 준비 기간 때 익힌 URP를 활용해 셰이더를 만져보며 내가 원하던 HD-2D 스타일을 구성해 봤다.

어떤 식으로 연출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포스트 프로세싱 부분은 진짜 '딸깍'이라 빠르게 소개만 하겠다 😉)








이렇게 포스트 프로세싱과 라이트, 셰이더를 다루면서 좋은 아트가 더 좋게 보일 수 있게 구성해 봤다. (FOV도 적용하려고 했었는데 빌드 버전에서는 깜빡하고 적용하지 못했다.)
여기서 셰이더 부분을 조금 더 설명하자면 구름 그림자 같은 경우는 아트 분께 요청해서 아래와 같은 구름 모양 이미지를 받은 후, time 값에 따라 offset이 달라지도록 하여 흘러가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걸 레벨 위에 배치해서 구름이 흘러가는 그림자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림자가 지도록 배치하는 게 번거로웠는데, 뭔가 찾아보면 라이트 자체에서 저런 느낌을 낼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능력 및 시간 부족으로 이렇게만 연출했다.
다음은 만들고 사용하지 못한 기능인데 바로 마법진과 사망 시 디졸브 효과를 위한 셰이더다.
가장 먼저 마법진의 경우,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플레이어 위에 활성화해서 기술 종류에 따라 다른 색, 다른 크기, 다른 밝기로 보여주어 몇 가지 리소스를 재사용해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아래와 같이 만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 부족으로 적용하지 못했다.


사망 시 디졸브 효과는 몬스터들이 책에서 나왔다는 설정이 있는 만큼 처치됐을 때 불타는 듯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아래와 같이 destroy 여부를 체크하게 만들고, true라면 time 값에 따라 sine의 그래프 형태로 noise 이미지의 alpha 값이 곱해지도록 구성했다.


그런데, 이건 그냥 내 능력 부족으로 적용하지 못했다. 우선 만들고 적용해 보니까 모든 캐릭터에 동시에 적용돼서 1차로 문제가 있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어떻게 인스턴스화하는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time 값에 따라 디졸브 되기에 destroy가 true가 되는 순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해결 자체는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데 당시에는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 지었다.
혹자는 '이런 식으로 효과를 남발하면 무거워지지 않냐?'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PC 플랫폼을 타겟으로 하고 있고, 게임 규모 자체도 그렇게 크지는 않아서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쯤에서 단락을 마치고 내가 했던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게임 디자인
2. 연출 (포스트 프로세싱, 라이트, 셰이더)
3. 피드백
시연과 최종 발표
개발 시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시연을 했다. 모든 기능이 다 구현된 건 아니지만, 결과물이 정말 괜찮게 나와서 만족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게임은 많이 플레이되지 못했다. 확실히 덱 빌딩이라는 장르 자체가 지닌 진입 장벽이 있으니 어쩌면 예정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받아들였지만 약간 속상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이때까지 주제와 장르 설정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는데, 이 때문에 우리 팀이 2박 3일 동안 열심히 만든 결과물이 조명받지 못하는 것 같아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우울감이 목구멍을 매웠다.
그래서 그냥 생각을 환기할 겸 다른 게임들을 살펴보면서 밥이나 먹었다.

그리고, 발표를 하게 됐는데 너무 처참하게 망해버려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래처럼 gif로 메카닉과 비주얼 컨셉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그냥 말 자체에도 힘도 없었고, 보여주고자 하는 바도 제대로 못 보여줬으며, 무엇보다 질의응답에 대한 답변이 최악이었다.
당시에 섬을 책에 비유하면서 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카펫을 파도처럼, 촛불을 등대처럼 연출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심사위원분께서 그 외에 섬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여쭤보셨다. 여기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강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도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고 말이다.


이렇게 찝찝하게 발표를 마치고 돌아오니, 와.. 오랜만에 자괴감이 세게 오더라.. 사실 나도 내가 준비하는 걸로 섬을 연상시키기는 어렵다는 걸 내심 인정하고 있었기에 제대로 발표하지 못한 것 같다.
애초에 내가 방향성 자체를 주제 중심으로 피워낸 게 아니라 따로 설정한 목표 중심으로 피워냈으니 시작부터 잘못된 기획이었다.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는 팀원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사과하고, 조용히 다른 팀 발표를 들었다. 습관처럼 인상 깊은 부분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러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이 과정에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기획자라면 연출에 신경 쓰기 이전에 기획적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렸어야 했어.
팀원의 노력을 생각했으면 나는 이 자리에서만큼은 최고가 됐어야 됐는데.
그냥 뻔뻔하게 섬으로 비유했다고 밀고 나가는 게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나는 왜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지?
기록.. 이런 게 정말 의미가 있었나?
나에 대한 신뢰보다는 결과가 중요했는데 진작에 제안해 볼걸..
사실 팀 모집 이후, 첫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섬이라는 키워드를 연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고, <Pirates Outlaws> 느낌으로 도서관을 바다로, 마법사를 해적 선장으로, 몬스터를 다른 해적단으로 설정해서 약탈하러 다니는 컨셉으로 변경을 고려했다.
근데 이걸 말로 꺼내지는 않았는데, 기존 제안을 듣고 와서 이제 막 팀이 결성됐는데 갑자기 핵심 컨셉 자체를 바꿔버리자고 말을 하면 시작부터 분위기를 망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뢰보다 결과물이 중요하니 그냥 말이라도 꺼내서 논의해 보는 게 맞았는데, 뭐가 그리 겁났는지 그러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

결과
결과는 당연하게도 수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그냥 명명백백하게 내가 방향성을 잘못 잡았던 게 문제라 팀원들한테 너무 미안하더라.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면 이번 실패를 가치 있는 경험이라고 기억할 수 있게 바꿔보자.
개인적으로 영원한 실패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수치스럽고, 부끄럽다면 그만큼 더 열심히 해 좋은 결과를 내서 훗날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
그래서, 제안했다.
저희.. 계속 개발해 볼래요?
결과는..?




감사하게도 모두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셔서 9월 이전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팀의 게임은 주제에 적합하지 않았을 뿐 재미도 있었고, 결과물도 잘 나왔으니까 말이다.
위에는 기획만 적어두기는 했는데 개발 쪽에서는 구조 정리하면서 새로운 기능들을 개발해주고 계시고, 아트 쪽에서는 몬스터와 캐릭터 이미지, 서재 모델링을 작업해주시고 있다.
아래에 게임잼 빌드본 플레이 영상을 올리면서 이번 단락을 마무리 짓겠다. 오랜만의 팀 프로젝트인데 한번 증명해 봐야겠다. (애초에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마치며
이번 게임잼은 수치스럽고 내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느낀 게임잼이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그 부족함을 직면할 수 있었기에 가치 있던 게임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 얻어맞았으니 위기감을 느끼고 뭐라도 하게 되지 않겠나.



원래는 여유가 생겼을 때 글을 쓰려고 했는데, 다들 팀원 분들 작업 속도가 빠르시기도 하고 할 일이 계속 생겨서 이러다가는 글을 못 쓸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후기 글을 작성해 봤다.
부끄러우니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평소처럼 선곡 하나 하고 사라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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