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종료를 맞이하며, <Lost In Hope> 회고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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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Lost In Hope] - 프로젝트 종료를 맞이하며, 회고록 (4) [完]
들어가며
23년 09월 03일, 약 1년 가까이 진행했던 <Lost In Hope> 프로젝트가 종료됐습니다.
<Lost In Hope>가 종료된 이유부터 말씀드리면, 더 이상 프로젝트가 팀원들에게 의미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 들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내가 가진 생각과 게임 프로젝트에만 집중하느라 팀원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가 맞을 것 같네요.
그렇다고 나쁘게 끝난 건 아니고, 그냥 지지부진한 진행도, 현생 이슈로 이탈하는 팀원들, 멘탈 나간 제 자신으로 인해 자연스레 종료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Lost In Hope> 프로젝트의 회고록을 작성해보려고 하는데요.
<Lost In Hope>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무엇이 좋았고 (Liked), 어떤 게 아쉬웠으며 (Lacked), 배운 점은 무엇인지 (Learned), 그리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Longed for)'를 정리하는 4L 회고 방식으로 그 동안 진행했던 '<Lost In Hope> 개발 일지'의 종장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럼 목차부터 살펴봅시다.
목차
- 무엇이 좋았는가? (Liked)
- 분석과 탐구 : 게임 디자인 이슈를 대하는 자세
- 논리와 설득 : 비전을 전달하는 자세
- 회고와 기록 : 성찰하고 성장하는 자세
- 시도와 실패 : 프로젝트 매니징을 다루는 자세
- 비전과 테마 : 나의 영혼을 대하는 자세
- 결론 - 무엇이 아쉬웠는가? (Lacked)
- 방향성 유지의 오류
- 규모 조절의 오류
- 관계 구축의 오류
- 완벽 지향의 오류
- 결론 - 무엇을 배웠는가? (Learned)
- 프로젝트로 팀원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
- 타겟 유저라는 함정을 피하는 방법
- 체계를 다루는 방법
- 비전을 설정하는 방법
- 자유를 얻는 방법
- 결론 - 무엇을 바라는가? (Longed for)
- 내가 정의하고, 나를 정의하던 틀 해체하기
- 내가 집착하던 이상과 의미 놓아보기
- 나의 게임 디자인적 주관, 나아가 삶의 주관 찾기
이상입니다! 목차를 예쁘게 정리하고 싶어서 끝을 맞추다 보니 너무 거창해졌네요.
사실 자기 계발이나 게임 디자인에 관심이 있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을 다루는 내용이라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 그냥 쉬엄쉬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추가로, 모든 회고를 정리한 뒤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진행하고 있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간단하게 소개하고 마무리 지으려고 해요.
서론이 길었는데 기대컨은 이쯤 하고, 같이 제 실패 원인을 낱낱이 살펴보도록 합시다!
무엇이 좋았는가? (Liked)
분석과 탐구 : 게임 디자인 이슈를 대하는 자세
대부분의 인디 게임 팀이 그러하듯, 저희 팀도 <Lost In Hope>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문제를 마주했어요.
가장 기초적인 방향성 조정에서부터 팀원들의 의사소통과 작업 방식, 그리고 결과물의 선정성까지.. 개발을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도 못한 문제도 많았고, 별 것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게 나중에는 치명적인 문제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죠.
저는 이러한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가능한 분석적으로 접근하며, 어떠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서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조사했는데요. 프로젝트를 다시 돌이켜봤을 때 이런 자세가 제가 문제를 해결하고 경험을 쌓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점은 '분석(分析)'과 '탐구(探究)'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분석은 각 문제를 세부 문제로 나눠 고민했기에 이런 키워드를 붙였어요. 저는 '모든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기에 앞서 각각의 시스템이 정해진 규격 내에서 온전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하나의 시스템의 설계할 때마다 의도와 기능이 강하게 호응할 수 있도록 분석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진행했어요.
이 과정에서 세부 문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예외 사항은 없을지 고민해보기도 했고, 여러 가지 대안이 떠오르면 각 대안이 다른 시스템과 어떻게 호응하는지를 고민하며 온전하면서도 현 상황에 적합한 시스템을 디자인하는데 주력했던 것 같아요.
아래처럼 분석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이상한 거 진짜 많이 했네요 ㅋㅋ. 그래도 생각을 확장하고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던 걸로 기억해요.
탐구는 말 그대로 게임 디자인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이것 저것이것저것 알아봤기에 이런 키워드를 붙였어요. 주로,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해당 문제와 관련된 키워드를 기반으로 탐구하거나, 별 문제가 없으면 그냥 흥미 따라서 이것저것 찾아본 것 같아요.
가장 간단하게 온라인으로 탐구했던 것들은 유튜브에서 'GMTK'나 'NDC', 'GDC' 같은 곳에서 영상들을 많이 봤고, 네이버 카페인 '게임 기획 스터디', '게임 기획자 모임' 등에서 다른 분들 기획서를 확인했던 게 기억나네요.
이 외에 오프라인으로는 여러 책들을 읽거나, 지스타 컨퍼런스 같은 곳을 다니면서 강연들을 들었습니다. (올해도 가요!)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분석과 재해석 없이 그저 쌓인 지식을 막 사용해서 오히려 독이 될 때도 있었는데, 지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시에 쌓았던 지식이 있기에 이것들을 거름 삼아, 지금 슬럼프를 이겨내고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논리와 설득 : 비전을 전달하는 자세
저는 <Lost In Hope> 프로젝트 초반에 회의를 진행하는게 무서웠어요. 바로 머릿속에 있는 개념이 말로 나오지 않아서 논리가 꼬이고 말을 절었기 때문인데요. 저는 당시에 이런 문제를 회의 전에 한번 더 생각을 정리하고 자료를 더 구체적으로 제작해 배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잘 해결이 됐는가? 아뇨.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악효과가 난 것 같기도 해요 ㅋㅋ.
간단하게 정리했을 때는 괜찮았는데 제 생각이 복잡해서 그런지 준비를 많이 해가면 별 다른 반응이 없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미리 다 정해놓고 어떤지 물어보는 꼴이니 팀원들 입장에서 '이걸 바꾸라고 해도 되나?' 의문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좋았던 점으로 뽑았는가?
바로 이렇게 정리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법, 그리고 생각 전달 순서를 구성하는 방법을 비롯해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되는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등 배운 점이 많기 때문이에요. ("부분에 대한 피드백이 있을 때 전체를 묶어 말하지 말자.", "내가 원하는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직접 말하기보다는 먼저 듣고, 추구하는 방향성을 제시하자." 등등)
사실 지금도 논리와 설득을 잘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1년 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어요. 추가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성장해야 되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요.
이런 점들은 커뮤니케이션이 약했던 저에게 특히 유의미한 경험이었어요. 20대 목표가 '최대한 성공적인 실패를 반복하자.'인 제 입장에서 이번 경험은 20대의 목표에 가장 충실했던 경험이었던 것 같네요.
물론, 거지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피해자인 팀원들에게는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회고와 기록 : 성찰하고 성장하는 자세
자.. 이게 저, AeonFlor를 인생 왕귀챔으로 만들어주는 핵심 중 하나입니다. '성찰(省察)'과 '성장(成長)', 이게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에요.
저는 세상에 나기를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정으로 태어나다 보니 살면서 누군가를 상처주기도 하고, 저 또한 상처받는 일이 잦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성찰하는 습관이 생겼고, 게임을 개발하고 나서부터는 혼자 메모장에 끄적이던 것들을 정제해서 블로그에 정리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는데,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가 있더라고요. 이 덕분에 잘못을 인정하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고 외에도 제가 해왔던 것들의 기록이 남는다는 점에서 정말 좋았어요.
어디 프로그램 같은 곳에 지원을 할 때 블로그에서 이전 기록을 살펴보며 작성하거나, 하다 못해 링크만 달아둬도 되니 정말 편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성장 기록을 읽어보며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성장한 자신을 볼 때, 그리고 십 수 시간에 걸쳐 정성스레 쓴 글들이 수십 개 쌓여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무진장 보람차잖아요!
무의미한 시간의 연속에서 작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 하나에도 뜻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말하는 것, 이게 삶이죠!
그리고 이건 그냥 예민함 관련된 TMI인데, 어머니 말로는 제가 돌도 안 된 아기였을 때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 안 주니까 얼굴이 붉어지더니 지 혼자 열받아서 실신한 적이 있대요.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 실신이 아기한테 가능한 건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랬다네요.. 이 얼마나 무서운.. ㅋㅋㅋ
이런 나를 버틴 팀원들..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시도와 실패 : 프로젝트 매니징을 다루는 자세
<Lost In Hope>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머리가 아팠던 문제는 바로 프로젝트 매니징이었어요.
<뚜두 농장> 프로젝트에서 배운 점을 바탕으로 게임을 디자인하는 건 어떻게든 한다고 쳐도, 팀원들이 각자의 작업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분배할지, 언제까지 진행할 거고 완성된 작업에 대한 피드백은 어떻게 할 건지,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의 작업을 어디까지 스스로 결정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생 인디게임 팀인데 그냥 자유롭게 카톡으로 계속 의견 교환해 가면서 하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제가 첫 스타트를 이상하게 끊었던 것 같아요.
저희 팀이 구성된 뒤, 첫 회의에서 제가 방향성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해서, 제안서 때 제출한 방향성과는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들이 계속 나왔어요. 이 때문에 저는 '기준이 확실해야 된다.'라고 생각해서 다음 회의에 방향성에 대한 문서를 최대한 상세하게 정리해 갔어요.
심지어 이후에는 강력하게 본인의 방향성을 주장해 놓고, 팀원들의 의견 또한 수용하겠다며 방향성을 합친 문서를 준비하고, 페이퍼 프로토타입으로 보여주기도 했고요.
아마 이때부터인 것 같아요. 팀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 얘는 뭔가 생각이 확실한가 보네. 뭘 만들고 싶은 건지 확실히 이해는 안 되는데 일단 뭔가 열심히 하니까 최대한 맞춰봐야겠다.
이렇게 이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내 방향성에 대한 고집은 고집대로 부려놓고, 어줍잖게 모두의 게임을 만든답시고 방향성을 혼합한 것. 그리고, 이렇게 커져버린 방향성을 내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한 것.. 이게 모든 문제의 발단이 아닐까 싶네요.
갑자기 좋은 점에서 문제점으로 바뀌었네요 ㅋㅋㅋ. 다시 돌아와 보자면, 프로젝트 입장에서는 정말 좋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매니징에 대한 경험 입장에서는 오히려 많은 경험을 쌓아 큰 도움이 됐어요.
방향성 공유를 위해서 방향성 나무를 만들기도 하고, 페이퍼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어요. 팀원이 여러 번 작업하게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 작업의 기준과 요청 방식, 피드백 방식을 정의하기도 했고요.
혹자는 '그래봤자 실패한 거 아니냐.'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실패가 있기에 성찰을 할 수 있고, 성찰을 하기에 성장할 수 있다.
<뚜두 농장>에서는 팀원으로서의 실패를 겪었고, <Lost In Hope>에서는 팀장으로서의 실패를 겪었습니다. 이 때문에 '내가 재능이 없는 것 아닐까?', '나한테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가치가 있나?', '애초에 이 길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아닐까?' 등 수도 없이 많은 고민을 하며 슬럼프에 빠져있었는데요.
결론은 정말 단순하게도 이를 발판 삼아 다음에는 더 잘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도 이런 치열했던 시도와 실패 덕분에 한때는 괴로웠지만 지금은 다시 한번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됐네요.
언제나 그러했듯 다음에도 다시 한 번 부딪힐 겁니다. 그게 저, 박상원이니까요!
비전과 테마 : 나의 영혼을 대하는 자세
<Lost In Hope>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가치 있었던 경험이자, 과거의 저에게 꼭 필요했던 자세에요.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에게 '진실된 것'이 있을까?
내가 지금 하는 이 말과 글도, 나의 생각도, 내가 가끔 보이는 빛도 전부 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기에 나는 빛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아마 제 속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거겠죠?
이 때문에 저는 세상에 완전한 창작과 독자적인 가치란 없다며, 모든 것은 믿음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어요. 분명 맞는 말이긴 하죠. 근데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제 안의 정체 모를 공허함에 늘 갈망하며 제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타인의 작품과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집중했던 거겠죠.
그런데 이제는 알아요. 제 안에도 빛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이건 조만간 또 다른 글로 써볼게요.
아무튼 이게 <Lost In Hope> 프로젝트와 어떤 관련이 있느냐? <Lost In Hope>에서 힘들게 방향성을 찾으며 방황했던 경험이 제 속의 공허함에 대한 의문을 낳았고, 블로그를 보고 연락해 주신 한 기획자분의 피드백으로 공허함의 원인이 빛의 부재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머리가 띵하더라고요 ㅋㅋ. 당시에는 혼란과 괴로움만을 느꼈지만, 그 덕분에 의문을 갖고 빛을 찾게 됐으니 분명 좋았던, 그리고 필요했던 자세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론
<Lost In Hope> 프로젝트에서 좋았던 점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아요.
구도 (求道)
정확히는 '길을 찾으며 깨달음을 구하는 자세'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이자, 지금의 저를 만든 키워드에요. 조금 오글거리네요 ㅋㅋ. 아래에 간단하게 요약하고 마무리 지을게요.
무엇이 좋았는가?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석하고 조사하며 배우는 자세
- 생각과 행동을 정리하고 기록하며 성찰하는 자세
-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자세
- 비전과 테마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
다음 글로 들어가기 전에
이제 4L 중, 첫 번째인 Liked(무엇이 좋았는가?)가 끝났네요.
하나하나 적다 보니 저도 놀랄 만큼 분량이 많아져서 적당히 끊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나눠봤어요.
다음 편에서는 Lacked (무엇이 아쉬웠는가?)로 찾아올게요.
항상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