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최근 디자이너로서 애매모호하던 포지션을 어느 정도 확정 지었습니다. 바로, 흔히 전투 기획자라고 부르는 '전투 디자이너(Combat Designer)'입니다.
이렇게 포지션을 결정 지음에 따라 제가 해당 포지션으로서 어떤 롤을 취해야 하고,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아본 것을 정리하기 위해 이렇게 글로 남기게 됐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전투 디자인에 대한 정의와 제가 생각하는 전투 디자인에 대해 간단하게만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글은 저명한 누군가가 정리한 것이 아닌 그저 제가 보고 들은 것을 소화한 후 작성하는 것이니 여과 없이 받아들이지 마시고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 언제든 댓글로 물어봐주시길 바랍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목차
- 전투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 왜 전투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가?
- 좋은 전투 디자인은 어떤 흐름을 따르는가?
- 전투 디자인을 위해서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 전투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투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전투 디자인(Combat Design)이란 게임 속 전투에 관련된 경험을 설계하는 것으로, 유저에게 테마에 맞는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설계를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프로젝트마다 전투 디자인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작업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 전투 관련 mechanics 설계 : 공격, 방어, 회피, 특수 능력 등 (애니메이션 프레임, VFX 등을 명시함)
- 적 디자인 : 행동 패턴, 공격 방식, 상성 등
- 전투 흐름 및 레벨 디자인 : 전투 진행 방식, 전투가 벌어질 필드 구조, 적의 배치 등
- 인터페이스 및 피드백 : 전투 중 유저에게 제공되는 정보, 액션에 대한 피드백(리액션) 등
- 전투 밸런스 : 적의 난이도, 유저의 능력 수준 등
모든 팀에서 딱 이렇게 정의된다기보다는 그냥 '유저에게 좋은 전투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모든 것을 고려하고 설계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Platinum Games'(이하 플래티넘 게임즈)의 <Bayonetta 1>(이하 베요네타)를 예로 들어보죠.
베요네타는 액션 게임의 대가로 유명한 플래티넘 게임즈에서 2009년에 출시한 게임입니다. 베요네타의 액션을 보면 굉장히 스타일리쉬한 걸 확인할 수 있는데요. 얼핏 보면 조작이 굉장히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플래티넘 게임즈는 단순하고 다양한 조작의 조합으로 가지각색의 액션이 가능하게 구성했고, 이를 통해 뛰어난 컨트롤 실력을 가진 유저가 아니더라도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수행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처음에는 막 누르면서 플레이하다가 점점 익숙해지면 특정 커맨드를 의도해서 쓰는 방식으로 'Easy to learn, Hard to master.'를 실현시켰습니다. 이렇게 플래티넘 게임즈에서는 베요네타의 이러한 전투 디자인으로 모든 기술 수준의 유저가 스타일리쉬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구성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유저가 특정 전투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을 전투 디자인(Combat Design)이라고 합니다.
왜 전투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가?
저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것들을 끊임없이 익히고 연구하며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 속에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 난해하지만 저의 바람, 저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한 단락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저의 이상은 제 자신을 성장시키는 한편 제가 한 가지 길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슬슬 길을 정해야 하기에 세상에 정의된 디자인 직군 중에서 저의 이상과 가장 유사한 디자인 직군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된 게 전투 디자인입니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시스템, 컨텐츠, 밸런스, 레벨, 시나리오, 퀘스트, 그리고 전투에 대한 디자인 중, 제가 가장 자유롭게 저의 가진 바 최대한의 전력을 쏟을 수 있는 직군은 전투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간단한 개발 지식에 더해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저의 소질과 잘 호응한다고 생각했고, 전투라는 범위 내에서 올라운더에 가깝게 활동할 수 있으니 더 좋은 경험을 위해 보다 주도적이고 도전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끊임없이 통찰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점에서 제가 가장 잘 활용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것부터 실없어 보이긴 하는데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나름 철학적이고 분석적이거든요.
아무튼 게임 디자이너로 성장해 가면서 처음의 직군에 제 전문성을 더해가며 고유의 포지션을 잡아가겠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처음은 전투 디자인에 몸을 담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제가 전투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좋은 전투 디자인은 어떤 흐름을 따르는가?
제가 생각하는 전투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인지', '소화', '발현'의 단계를 따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래에서 각 단계에 대해 알아보죠.
먼저 '인지' 단계입니다. 인지 단계에서는 유저가 전투와 관련된 mechanics를 파악하고, 본인이 활용할 수 있음을 깨닫는 단계입니다. 주요 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 Unit mechanic(control 관련)은 단순 명료하며 확장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 Unit mechanic(control 관련)은 유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hook을 갖고 있어야 한다.
- Unit mechanic(control 관련)은 공통된 전투 테마 아래 고유의 특색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소화' 단계입니다. 소화 단계에서는 유저가 인지한 mechanics를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며 control을 바탕으로 창발되는 action을 시도하고 학습하는 단계입니다. 주요 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 Unit mechanic(control 관련)에서 창발된 action을 테스트할 수 있는 적 혹은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
- Unit mechanic(control 관련)에서 창발된 action은 점진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유저는 action을 선택으로 여겨야 한다.
마지막은 '발현' 단계입니다. 발현 단계에서는 유저가 action에 대한 게임 시스템의 reaction으로부터 감각을 전달받고, 이로써 스스로 강화되는 단계입니다. 주요 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 Action에는 유저의 속성이 투영될 수 있어야 한다.
- Action에서 reaction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서사가 만들어져야 한다.
- 서사가 유저의 속성으로 하여금 감각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제가 생각하는 전투 디자인에 대해 정리해 봤는데요. 위에 정리한 '인지', '소화', '발현'의 주요 포인트가 모두 지켜져야 좋은 전투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 표현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추상적으로 변했는데, 이해를 위해 <슈퍼 마리오>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슈퍼 마리오>에서는 플레이 과정이 곧 전투이기도 하고 설명하기 좋아보여서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슈퍼 마리오>에는 '이동', '대시', '점프'라는 unit mechanic이 존재하며 이들은 모두 단순 명료합니다. 이들은 조작의 관능성을 불러일으키기에 그 자체로 hook을 갖고 있으며, 블럭과 몬스터라는 요소에 의해 다시 한번 hook이 강화됩니다. 그리고 이런 <슈퍼 마리오>의 unit mechanic들은 '장애물을 뚫고 나간다.'는 테마에 호응하며 각 조작별로 확연히 구분됩니다.
이들은 서로 활용하고 조합하여 걷거나, 달릴 수 있으며, 달리며 점프, 웅크리기 등의 다양한 action을 취할 수 있습니다. 유저는 이러한 action을 활용하여 적을 처치하거나 피하며 목표로 달려가게 되고,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스테이지 기믹에 의해 더 난이도가 높은 action을 요구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저는 쉽지만 보상이 없는 루트, 위험하지만 보상이 있는 루트 등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받습니다.
유저는 마리오의 조작에 자신을 투영시키며, 그 과정에서 '여기에서만 30번을 실패했어.', '내가 어려움을 뚫고 클리어했어.', '마지막 목숨이었는데 블럭에서 추가 목숨이 나왔어.' 등의 서사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는 유저가 가진 절망감, 자신감, 안도감을 비롯한 복합적인 감각을 강화하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전투 디자인은 단순히 유저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게임이 끝난 후에도 여운과 영구적인 감각의 강화, 정확히는 유저에게 감각을 새겨 넣어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당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유저에게 환상을 새기는 방법 또한 알아야 하기에 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인지에서 소화로 나아가며 학습을, 소화에서 발현으로 나아가며 플레이를. 이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전투 디자인의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명작이라고 불리는 게임들은 굳이 전투가 아니더라도 플레이(play)에 충실하여 발현을 구현해냈으니 어떻게 보면 전투에 국한되지 않는 좋은 게임 디자인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네요.
전투 디자인을 위해서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이번 항목에서는 간단하게 전투 디자인의 핵심 질문에 대해서만 나열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 질문들에서 확장해서 성장을 이뤄나갈 예정이기에 어떻게 보면 제가 세울 전투 디자인 철학의 줄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 유저들에게 mechanics를 인지하게 할 방법
: 사람은 무엇에서 힘을 바라는가? - Unit mechanic(control 관련)에 특색을 불어넣을 방법
: 사람은 무엇에서 쾌를 느끼는가? - Unit mechanic(control 관련)을 더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방법
: 테마는 어떻게 인지되는가? - 전투 흐름을 구성하기 위한 프레임워크 구축 방법
: 창발적인 플레이는 무엇에서 기인되는가? - Action에 유저를 투영시키기 위한 방법
: 사람은 무엇에 자신을 동화시키는가? - Action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의 패턴을 구성하기 위한 방법
: 어떤 환경이 사람을 고민하게 만드는가? - Reaction으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
: 사람은 어떤 상황을 인상적이라 여기는가? - Action와 reaction으로 서사를 만들기 위한 방법
: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조합되는가? - 서사로 유저의 속성을 자극하고 강화하기 위한 방법
: 어떤 이야기가 매혹적인가?
전부 전투 디자인 철학의 줄기가 될 질문이다 보니 통찰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금 당장 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아직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 한 사람의 전투 디자이너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모든 질문에 대한 제 답을 찾아야겠죠. 그래야만 전투 디자인의 길을 발을 들였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은 지금까지 그러했든 계속 인지하고 고민하면서 저만의 답을 만들고 연결할 시간이 필요해 보이네요. 한번 깊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전투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투 디자인이라는 역할 자체가 제 소질, 제가 해온 것과 강하게 호응하기에 지금처럼만 꾸준히 나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조금 더 특화해야 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아래에 앞으로의 수행 목록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 게임 디자인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며 통찰을 강화하고 데이터를 쌓는다.
- 전투를 비롯해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면 게임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좋았던 점을 기록한다.
-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을 게임에서 활용할 수 있게 전투 디자인 및 구현을 해보며 경험을 쌓는다.
- 관심을 갖고 알아보던 shader와 VFX, animation 등의 아트적 요소를 취미 수준으로 끌어올려 연구하고 기록한다.
[1]에서는 기존 자료와 데이터를 분석해 통찰과 데이터를 얻고, [2]에서는 제가 좋았던 것들을 기록하며 저의 고유함을 찾으며, [3]에서는 직접 전투 디자인 및 구현을 해보는 것을 통해 저의 고유함을 구체화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4]에서는 이런 고유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 및 구현해 보고요.
이렇게 하면 좋은 전투 디자인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좋은 전투 디자인을 찾고 분석할 수 있는 안목 정도는 갖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마치며
오늘은 이렇게 전투 디자인에 대한 정의와 제가 생각하는 전투 디자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사실 디자인이라는 직군이 워낙 그 범위가 넓고 애매모호하다 보니 아직까지 무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네요.. 근데 뭐 제가 언제 맞다는 걸 확신하고 들어갔습니까? 그냥 꾸준히 하다 보면서 시야가 넓어지면 그때서야 여기구나하고 가는거죠 뭐.
이번 글은 깔끔하게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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