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난 6월 5일 수요일, 교내 공학 대학 캡스톤 디자인 페어에 참가했다. 앞서 캡스톤 디자인 결과 발표회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도중 참가작으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딱 한 가지 반응이었다.
..?
관심 없으신 거 아니었어요?
결과 발표회 당시 특별한 질문을 받거나 따로 시연을 진행하지 못해서 내 프로젝트에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다. 오죽하면, 결과 발표 이후에 집에 가면서 전자공학부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정상적이진 않은 것 같다며 스스로를 다독일 정도였다.
그런데, 며칠 뒤 연락이 온 걸로 보아 관심이 없으셨다기보다는 내가 너무 우다다다 말해서 딱히 할 말이 없으셨던 것 같은 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이 부분은 이번 디자인 페어에서 찾은 내 결점 중 하나인데 뒤에서 다시 한번 말하겠다.
아무튼 아래와 같은 공지를 받고, 참가하게 됐다.
준비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건 없다. 시연이야 이미 다 구동이 되는 상황이었고, 각 기능의 동작과 이슈에 대한 자료는 따로 개발하면서 정리해놔서 특별히 할 게 없었다.
이에 아래와 같이 기존 자료를 짜집기해서 포스터를 하나 만들고, 스크립트만 대강 준비했다.
이후에는 교수님이 피드백을 주신다고 해서 유선상으로 여러 가지 피드백을 받았다. 이중에는 나의 결점에 대한 내용도 있었는데 아래에 한 마디로 정리하겠다.
열심히 잘 한 건 누가 봐도 알겠어. 그런데,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이는 짧은 시간에 내 프로젝트에 대한 핵심 feature만 설명하기에도 벅찬데, 자꾸 전체적인 것을 일반화해서 한 번에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치명적인 오류였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비단 이번 행사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라, 내가 설명을 해야 하는 어떤 상황에서든 이와 같이 행동했다는 걸 알게 됐다.
듣는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아도, 어디서 얼마나 잘라서 전달해야 할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이에 앞으로는 말하기 이전에 내가 무엇을 얼마나 말하는 게 적절할지 고민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런 앞으로의 계획은 뒤로 하고, 교수님의 피드백을 등불 삼아서 과제 동기와 수행 방법에 대한 분량을 줄이고, 주요 기능들에 대한 소개를 중심으로 스크립트를 구성했다.
발표
..솔직하게 행사 전날까지의 나는 오랜만의 여유에 젖어있었다. 내 스스로 결과보다 졸업이 중요하다며,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회피하려고 했고, 이에 달리 연습을 하거나, 발표 스크립트를 외우지 않고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를 품고 있었다.
이런 나의 나태함이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 전날 밤에야 몸을 굴리고 글을 쓰면서 어떻게든 정신을 다 잡았는데 너무 늦게 정신을 차려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유와 투지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행사에서는 적당히 맞고 오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에리카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이 되는 행사장에 갔는데, 행사장에 들어가자마자 든 생각은 이렇다.
아니, 왜 본격적인데?
행사장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화려했고, 또 전문적이었다. 예식장으로도 사용되는 곳이라 그런지 공간 자체가 화려했고, 각 팀에 제공되는 테이블은 여느 행사의 간이 테이블이 아닌 르네상스 시대에 나올 것 같은 자주색 보가 펼쳐져있는 테이블이었다.
심지어, 다른 팀들은 타이어 베어링을 만든건지 엄청 커다란 기계를 가져와서 전시를 하기도 하고, 무슨 배를 가져온 팀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사장 앞에 일렬로 나열돼 있는 좌석에 교수님들과 산업체에서 나오신 분들이 정좌로 앉아계셨다.
이걸 본 나의 심정은...
여기에 더해 우리 팀 발표는 마지막이어서 다른 팀이 발표하는 걸 봤는데, 다들 기본적으로 스크립트 외우고 왔다. 아니.. 이게 정상이기는 하지..
그래서, 어떻게든 발표 전까지 스크립트를 외워봤는데 초반 반절 가량만 외운 채 발표를 하게 됐다. 이에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렇다.
마! 발표는 자신감 아이가!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그냥 스크립트 읽으라!
어디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프레젠테이션은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확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발표에 들어가는데 이 말이 생각났다. 그럼 나는 이 프로젝트를 확신하고 있는가? 당연하다. 지난 반년동안 처음으로 언리얼 개발을 하면서 삽질과 함께 머리가 엄청 깨졌으니까, 그렇게 만들어낸 프로젝트니까!
나는 지난 기간동안 다른 강의들은 다 던지고 이 프로젝트에만 집중했다. 다른 팀처럼 발표 준비는 안 됐지만 적어도 프로젝트에 한해서는 나보다 열심히 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투지, 자신감, 확신을 내세우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중간부터 머리가 하얘져서 스크립트 읽었다 ㅋㅋㅋㅋㅋㅋ. 아니, 한 번 꼬이니까 당황스럽더라고.. 그래도, 자신감만큼은 잃지 않았다. 스크립트를 읽되 최근 얻게 된 여유를 품은 채 당당하게 말을 했다.
확신은 공포를 이긴다고 했던가? 최소한 이번 기회로 그동안의 발표 공포증은 해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발표가 진행될수록 심사 위원분들은 더 가까이에서 더 적극적으로 들어주셨고, 질의응답 단계에서는 칭찬과 함께 프로젝트에 대한 긍정적이고 관심 어린 질문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것 자체가 감사를 넘어 정말 감격스러웠고 행복했다.
한편으로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는데, 피드백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주요 기능들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건 좋은데 포스터에도 이미지가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 이 프로젝트가 갖는 창의성을 조금 더 잘 어필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 다음에는 꼭 무조건! 내용을 다 말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스크립트를 외워라.
하나 같이 유효하고 피와 살이 되는 피드백이었다. 특히 발표 스크립트.. 이 부분은 나의 나태함에 대한 채찍이다.
어필보다는 본 작품에 집중하겠다는 마인드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가장 좋은 건 모든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면, 나의 노력이 담긴 본 작품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자.
결과
결과는 대상! <Breath in Winter> 프로젝트로 공학 대학 캡스톤 디자인 페어에서 대상을 받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대상이라는 걸 확인했는데, 잠깐은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의 나태했던 마인드셋이 가장 큰 이유고, 다음으로는 더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뭔가 기쁘면서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들었다.
그런데, 난 이럴 상황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안다. 정답은 아래와 같다.
나아가는 것.
내 스스로 부족함이 느껴질수록, 나의 과거가 후회될수록, 더 좋은 결과에 대한 미련이 남을수록, 온갖 부정을 동력 삼아 나아가면 된다.
후회하고 괴로워할 시간에 나아가고 증명하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증명했을 때 '그때는 아쉬웠지. 하지만,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어.'라고 말하면 된다. 과거의 부정함이 고귀한 의미를 품을 수 있도록 행동하고 나아가면 된다.
나는 이렇게 '나아감'을 내 삶의 테마로 결정하지 않았나. 나아가고, 또 나아가서 증명하자.
마치며
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어쨌든 박상원 우승! 상금 100만 원! 그동안 혼자 고생해가면서 열심히 프로젝트를 진행한 보람이 있었다. 상금은 야무지게 써야지 히히 😁😁
앞으로도 늘 나아가는 삶을 살아보자..!
근데 뭐 잊은 거 없음?
+)
2024.06.20 추가
다시 보니까 참여했다고만 하고 어떤 작품으로 참여했는지를 자세히 적지 않아서 아래에 시연 영상을 첨부한다. 작품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참고하시길..!
추가로, <Breath in Winter> 프로젝트는 하고 싶은 게 생겨서 당분간 휴식을 할 예정이다.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비밀이다! (조만간 블로그에 올리겠슴당..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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