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오늘은 게임 디자인 관련해서 유명한 Game Maker's Toolkit 채널에서 '네메시스 시스템이 스토리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영상을 봤다.
Game Maker's Tool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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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의 원제는 'How the Nemesis System Creates Stories'다. 이 영상은 이전에 [게임 디자인/게임 분석] - Slay the Spire 분석 - Mega Crit Games 글을 작성하며 스토리 전달 방식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나는 포괄적인 스토리의 내러티브 방식을 알아보고 싶었으나 어쩌다 보게 된 영상은 '복수'라는 컨셉으로 스토리를 전달한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시스템 자체가 정말 매력적이어서 한 번쯤 정리하고, 소개할 법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게임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에 나오는 NPC처럼 실제 게임의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거나 사람처럼 행동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지금 기술력으로는 무리지~'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실제로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가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것도 개발사가 서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형태가 아니라 유저가 직접 유추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형태로 말이다!
따라서 오늘은 이런 흥미로운 시스템에 대해서 정리하는 글을 작성해보려고 한다.
Nemesis System이란?
네메시스 시스템은 2014년 <Middle-Earth : Shadow of Mordor>(이하 모르도르)라는 게임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모르도르는 대본 없이 이야기가 공연처럼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즉흥곡 형식의 스토리를 선보이고자 했고, 이에 따라 유저가 행동을 할 때마다 게임이 이를 인지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형식으로 서사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적과 싸우다가 도망치면 추후 적에게 겁쟁이 소리를 듣는다던가, 적을 죽였는데 살아돌아와 복수를 말하는 방식 등으로 유저의 행동을 카탈로그화한 뒤 유저에게 가장 흥미로울만한 대사를 하게 하는 방식으로 유저에 행동에 따른 스토리를 진행한다고 말한다.
Nemesis System이 어떻게 이야기를 다루는가?
대부분의 싱글 플레이 게임에서 유저 캐릭터의 죽음은 그저 세이브포인트로 돌아가기만 하면 지워지는 기록일 뿐이다. 이에 반해 멀티 플레이 경쟁 게임에서는 자신의 죽음이 단순히 리스폰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인 적을 보여주고 복수를 할 수 있게 디자인 된 형태가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한 예시로, <League of Legend>가 생각났다. 혹시 롤을 하다가 상대 정글러나 라이너한테 억까를 당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부활한 뒤 그 적을 다시 처치했을 때 일반적인 처치보다 더 큰 쾌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네메시스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복수심'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도르는 싱글 플레이에서 적에게 이런 복수를 하겠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유저 캐릭터인 탈리온은 게임 내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정말 그 세계관 자체에서 죽었다가 살아나게 되는데 이런 설정 덕분에 유저는 '복수'한다는 행위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유저 캐릭터와 적 오크들이 상호작용할 때마다 대화 등으로 다양한 상황이 연출되고, 이 상황은 그 다음 상호작용 때까지 영향을 주어 점점 더 깊은 서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죽음과 폭력이 만연한 게임속에서 더 오래 남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이야기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설정이 필요하다. 모르도르에서는 이를 오크의 수직적인 위계 질서로 해결하였는데, 오크들은 유저와 상호 작용을 할 때 마다 승진하거나 강등되는 등의 변화를 겪게 되고 이는 곧 세계 내의 힘의 균형이 유저와 깊은 관계에 있는 적들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유저의 행동에 따라 변화를 겪는 오크들은 단순한 적이 아닌 유저의 숙적이 되거나 혹은 동료가 되어 유저가 몰입할 수 있는 서사의 대상이 된다. 만약 특정 오크가 동료가 될 경우 더 이상 많은 상호 작용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스파이로 있다가 추후 내가 위험할 때 나를 살려주거나, 혹은 배신하여 상황을 악화시키는 등 더 다양한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르도르의 다양한 관계와 이에 따른 상호 작용은 이야기가 성장하는데에 도움을 주게 된다. 일반적인 멀티 엔딩의 게임들은 이미 짜여진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해 정해진 엔딩을 보지만, 모르도르에서는 이야기가 오크와 유저의 행동에 기반하여 전개되기에 예측 불가능한 유저 개개인만의 스토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Monolith 사는 이야기들이 실제로 좋은지 어떻게 확인할까?
마크는 모르도르를 개발한 Monolith 사가 네메시스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좋을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2가지를 선정했다.
첫 번째는 서로 다른 오크들을 구분하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껏 상호 작용을 통해 유저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게 구성해놨는데 적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면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따라서 모르도르의 오크들은 각자의 이름과 생김새, 특징, 말투 등을 매우 체계적이고 절차적인 생성 방식을 통해 설정하여 각자 강한 개성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유저가 상호 작용한 오크들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이 외에도 더 잘 기억되게 하기 위해 개발사에서 손수 설정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오크들과의 감정적인 관계를 만들고 이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크는 단순히 유저의 적이 아닌 숙적이나 동료 같은 특별한 관계가 되어야 하며, 모르도르에서는 이 관계가 주로 유저 캐릭터의 죽음으로 형성된다. 오크를 죽이면 좋은 아이템이 나오도록 설계하여 도전하도록 유도하고, 이 과정에서 오크와의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계속 반복되면 유저는 기계적으로 암기를 하게 되고, 곧 예측이 가능하여 네메시스 시스템은 단순한 게임 플레이 메커니즘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모르도르는 이런 이벤트가 매우 드물게 일어나도록 디자인하여 관계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구성했는데, 예를 들어 모르도르의 적은 죽여도 일정 확률로 살아 돌아와 유저에게 복수하는 관계를 만들지만 이런 관계가 결코 흔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형성하는 원리는 오크들에게 유저와의 상호 작용 점수라는 보이지 않는 스탯을 부여하고, 이 스탯 값이 높은 오크들에 한해서만 희귀하게 이벤트를 발생하는 방식으로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외에 처음 보는 오크가 "복수심에 불타는 형이 누군지 넌 모르지"와 같은 어떤 관계를 암시하는 간접적인 대사를 말하게 하여 유저가 오크들 사이의 관계를 유추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몰입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영상에서는 서로 다른 이벤트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특정한 패턴을 만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이런 서사를 만드는 것을 유저에게 맡기는 건 어떻냐고 말하는데 이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단순하게 개발사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서 전달하는게 아닌 빈 공간을 마련하여 유저들이 직접 상상하고 자신만의 이야기, 자신만의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게 디자인 한다는 것. 이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왜 우리는 다른 게임에서 이런 시스템을 본 적이 없을까?
마찬가지로 2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 Monolith 사가 네메시스 시스템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특허로 인해 다른 게임에서 이 시스템을 채용하기란 어렵다. 유사한 시스템을 가진 게임을 만들더라도 표면적인 부분만 다르고 핵심은 같기 때문에 대대적인 구조적 개편을 통해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오도록 초점을 맞추지 않는 이상 모르도르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게임은 만나기 힘들다고 한다.
두 번째로, 모르도르 자체에서 지나친 소액 결제와 부풀려진 후반부 게임, 좋지 않은 라이브 게임 디자인으로 인해 인기가 식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시 게임 디자인과 BM은 따로 생각하면 안 되는게 맞는 것 같다. 게임에 어울리는 BM을 적용해야지 게임 디자인 의의에 어긋나는 BM을 넣는 순간 게임성은 크게 떨어지는 것 같다. 눈 앞에 이익만 보고 장기적인 이익은 챙기지 못하는 느낌이다.
마치며
오늘은 이렇게 네메시스 시스템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유저가 개개인의 이야기를 만들고, 게임에 직접 의미를 부여하며, 게임 속 세계에서 함께할 수 있는 순간, 유저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게임이 된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내 이상향에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이런 시스템이 있다.'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해보인다. 특히 예전에 <뚜두 농장>을 기획하면서 몇 가지 애니메이션으로 다채로운 상황을 연출해보려고 이거랑 비슷한 시스템을 기획해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이런 저런 문제로 개발하지 못했지만 이걸보고 조금 더 보완해서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좋은 게임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나는 배운다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았지 게임 시스템 자체에서 별 다른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게임 분석을 하고 GMTK 영상 정리를 시작하면서 하나 둘 무언가 보이기 시작하니 잘 디자인 된 게임 시스템을 보는게 즐거워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네메시스 시스템은 정리하는 건 여전히 힘들었지만 시스템 자체는 되게 흥미로워서 즐겁게 영상을 볼 수 있었다. '흥미롭다' 수준에서 그치지 말고 어떻게 발전하고 적용할 수 있을지 조금 더 생각해보는 과정을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게을러지지 말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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