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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제목 | 콘크리트 유토피아 (Concrete Utopia, 2023) |
장르 | 포스트 아포칼립스 |
상영 시간 | 130분 |
리뷰
평소와 같이 밥을 먹기 전에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던 중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의 영화가 눈에 띄었다. 평소에 아포칼립스 물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언제 한 번 보겠다고 생각하던 영화였기에 별생각 없이 재생했고, 그 자리에서 영화를 다 봤다. 감상평은 딱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역겹다.
영화가 역겹다는 건 아니다. 단지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유 모를 불쾌함과 역겨움이 내 속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내 취향이 아니라면서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역겹지?
뭔가.. 기존에 선호하던 가치를 벗어나 무언가를 새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러니까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 같아 보였다. 나는 왜 이 영화를 보면서 역겨워했던걸까?
고민해 본 결과 이유는 단순했다. 영화 내에서 그토록 치고받으며 갈등을 만들었던 그 중대한 문제들이, 그리고 그 문제들로 야기됐던 슬픈 엔딩이 사실은 아주 작은 편협함을 깨지 못해 생겼다는 사실에 역겨움을 느낀 것이었다.
그 '편협함'이란 뭘까? 바로, '우월감', 정확히는 '아파트의 주민으로서 갖는 우월감'이다.
영화에서는 애초부터 주민이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상황이 비교적 여유로웠던 초반에서부터 극단으로 치달았던 종장까지 주민들은 그저 저들끼리만 소통하며, 주민이 아닌 사람들은 바퀴벌레, 짐덩이 취급을 하고, 그들을 인격이 아닌 처리해야 할 '문제'로 본다.
이런 문제는 폭력적이고 권력에 도취되기 쉬운 리더에 의해 극단적으로 다뤄졌으며, 우월감은 점차 두루뭉술하고 은연 중에 드러나는 우월감이 아닌 '황궁 아파트의 주민'이라는 노골적이며 극단적인 집단주의로까지 이어졌다.
'생존'이라는 목적 하에 사소한 차이로도 선을 긋고, 너와 나를 구별하며, 외부인을 배격하던 그들의 모습. 그리고, 결국 외부인들과의 충돌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세상으로 내쫓긴 그들을 보며 나는 역겨움을 느꼈던 것이다.
오로지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었던 그들만이 역겨웠던걸까? 아니다. 내가 역겨웠던 건 등장 인물 너머의 편협함, 그리고 그 편협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니,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내 존재'에 대해 나는 역겨움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볼 당시에는 등장인물들의 이기심과 편협함에 혀를 찼다. 그러나, 점점 '내가 그들과 다를게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정말로 순수하게 살아왔는가? 짧은 생애를 살아오면서 단 한순간도 나의 편협함으로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상처 입히지 않았노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런 생각은 영화 종장의 한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기억에 나는 대로만 적겠다.
명화(박보영)를 도와준 외부인 : 근데 그.. 아파트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 막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명화(박보영) : (언뜻 카메라를 바라보며) ..아뇨.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사실 너무 노골적이라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했는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한 것 같다.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그저 영화 속에서만의 이야기일까요? 집단의 질서를 따르며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더욱 잔인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영화에서는 내내 푸른빛과 잿빛의 라이트를 사용하는데, 결말에 가서 아파트를 나온 명화와 외부인이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며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줄 때는 따뜻한 색감의 라이트를 사용한다. 나는 이를 보면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상황과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을 느꼈다.
어쩌면 작가는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 처했든 인간은 그 상황을 재해석하고 개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해도 조금 과대 해석 같기는 하다 ㅋㅋ. 그래도 시리고 차갑게만 보였던 배경이 끝에 가서는 서로 협력하는 모습과 함께 따뜻하게 보이는 걸 보면, 우리들이, 아니 당장 나부터 내 안의 편협함을 깨고 작은 선의를 베푸는 것만으로도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역겨웠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인간 군상의 역겨움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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