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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을 꼭 먼저 감상하시고 봐주세요!
영화 정보
제목 | 원피스 필름 Z (ONE PIECE FILM Z, 2012) |
장르 | 애니메이션 |
상영 시간 | 108분 |
리뷰
약 10년 전쯤, TV의 투니버스나 챔프와 같은 만화 채널에서 <원피스 필름 Z>가 상영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뭣도 모른 채 보다가 끝날 때즈음 막연한 울림을 느꼈었는데, 그때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영상을 본 후 느낀 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이렇게 매력적으로도 그려낼 수 있구나.
당시에는 주인공인 '루피'의 시점에서 감상하며, 영화가 끝날 때 이유 모를 울림을 느꼈다면, 조금 더 성장한 지금은 '제파'의 시점에서 이야기 속에 들어간 다양한 은유와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부터 이야기해보자.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본 글은 영화를 본 후 즐겨주길 바란다. 내 보잘것없는 글로 인해 제작자들이 설계한 경험, 그리고 여러분들이 받을 경험이 퇴색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꼭 영화를 먼저보고 글을 즐겨주길 바란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 이야기는 '제파'라는 거프의 동료이자 전직 해군 대장이었던 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과거 제파는 강인한 정신력과 올곧은 정의감으로 동료들의 신뢰를 얻고 빠르게 해군 대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제파에게는 3가지 비극이 닥쳤다. 첫 번째는 제파에게 원한을 품은 해적에게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는 것. 두 번째는 마음을 다잡고 제자를 육성하고 있던 때에 악마의 열매 능력자인 해적에게 습격을 받아 수많은 제자들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세계 정부가 제자들을 몰살했던 해적을 칠무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제파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아간 해적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정의를 박탈한 해군에 대한 절망으로, 제파라는 이름을 버리고 제트라는 인물이 되어 네오 해군이라는 조직을 창설한다. 그리고, 해적을 몰살하고 자신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신세계의 3가지 엔드 포인트를 파괴하려고 하는데 <원피스 필름 Z>는 이를 막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이야기를 다룬다(엔드 포인트를 파괴하면 신세계가 마그마로 뒤덮힌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연하게도 밀짚모자 해적단이 이를 막는 데 성공한다. 사실 이야기의 흐름을 추상화해 보면 정말 단순하다.
모종의 사건으로 타락한 인물을 막아 세상을 구한다.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지 많지 않나. 당장 나만 해도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수많은 히어로 영화들이 떠오른다. 다만, 그럼에 이 영화가 매력적이었던 건,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은유를 재미있게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줄거리 소개는 이쯤 하고, 인상 깊었던 상징들에 대해 하나씩 소개하도록 하겠다.
# 01 : 과자
거프가 제파의 과거를 회상할 때 유독 손에 든 쌀과자가 강조되는 걸 확인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서 별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회상이 끝나고 나서, 어쩌면 과자가 제파의 신념을 상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파가 가족을 잃은 슬픔을 딛고 '영웅을 키워내겠다.'는 꿈을 꿨다는 것, 바로 다음 장면에 과자가 부서지는 걸 강조하며 제자들이 몰살당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망설임이 없는 적은 무서운 법이라고 말하며 부서진 과자를 씹어먹는 장면을 넣은 것.
나는 이게 '가족을 잃은 슬픔에도 새로운 꿈을 꾸며 본인의 신념을 지켜갔지만, 그 신념마저 산산조각 났고, 이제는 부서진 신념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연료 삼아 스스로를 불태운다.'라는 이야기로 해석됐다.
사실 어느 곳이나 많이 나올법한 장면이기도 해서 '과한 해석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연출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가?'도 중요하지만 '감상하는 이가 무엇을 느꼈는가?'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런 연출을 통해 제파라는 인물의 서사에 더 깊게 몰입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적어봤다.
# 02 : 죽어가는 해군을 기리는 노래
작품을 여는 노래로 영화 설정상 죽어가는 해군을 기리는 노래라고 한다. 일단 연출을 떠나서 나는 정적 속에서 나즈막히, 그리고 이야기하듯이 노래를 여는 걸 좋아하기에 인상 깊게 봤던 장면이었다.
이 노래가 특별한 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 노래는 '죽은' 해군을 기리는 노래가 아니다. '죽어가는' 해군을 기리는 노래다. 영화 중간에 제파의 제자였던 아오키지가 나와서 제파를 기다리며 그가 자주 부르던 이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난 이 노래가 싫었어요, 선생님. 죽어가는 해군을 기리는 노래라니, 마음에 안 들어.
그 뒤,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려는 제파를 말리며 죽을 작정이냐고 말한다. 제파는 자신은 안 멈춘다며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가라고 말하는데, 힘으로 그를 말릴지 고민하던 아오키지는 결국 그냥 뒤돌아간다.
여기서 '죽어가는 해군을 기리는 노래'가 싫다는 게, '스스로 죽음으로 나아가는 해군'인 제파를 떠나보내기 싫다는 의미로 이해되어 감탄이 나왔다. 죽어가는 해군을 기리는 노래는 제파에 대한 아오키지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이 노래로 막을 내리는데 한 영화의 시작과 끝을 하나의 노래로 여닫는 것도 <원피스 필름 Z>의 매력이다.
# 03 : 기계 팔과 제트
기계 팔,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봤는데 나중에 루피가 이를 부수는 걸 보면서, 이게 제파의 분노와 절망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기계 팔은 사랑하는 가족과 자식 같던 제자들을 잃게 만든 비극을 겪고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파가 비극으로 갖게 된 것은 기계 팔만이 아니었다. 해적에 대한 분노와 끝내 자신의 정의를 저버린 해군에 대한 절망, 이런 부정적인 감정 또한 제파가 비극 후에 갖게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쌓인 절망으로 끝내 부서져버린 신념의 조각이, 희망 위의 정의가 아닌 증오의 정의를 집행하려는 캐릭터 '제트'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럼, 이제 기계 팔이 제파가 품은 증오의 상징이라는 걸 알았으니, 다시 한번 아오키지에게로 돌아가보자. 아오키지는 제파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뒤에 밀짚모자 해적단에게로 간다.
아오키지는 밀짚모자 해적단이 제파를 저지하러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 그 과정에서 루피의 소망에 흔쾌히 연대하는 해적단을 바라보며 아오키지가 잠깐 넋을 잃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나는 아오키지가 '쓴 희망'을 느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말과 힘으로 설득하려 했던 자신과 달리 그저 소망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루피를 보며 저게 자신은 하지 못했던 제파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 아닐까?
(이 외에도 전직 해군과 해적이라는 점으로 보아 이제껏 적이라고 여기도 해적에게서 강한 인간성이 느껴지는 것에 대한 당혹이 섞여있을 수도 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원피스를 제대로 안 봤기에 아오키지라는 캐릭터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루피와 제파는 마지막 엔드 포인트에서 충돌하게 된다.
제파는 영화 내내 루피와 부딪힐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의 이상은 쉬운 것이 아니다. 너의 이상으로 인해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지나갈 각오가 되어있는가?
그럴 때마다 루피는 말한다.
그런 건 몰라. 나는 그냥 해적왕이 되고 싶을 뿐이야.
솔직히.. 그저 고집부리기와 다를 바 없다. 거창한 의미도, 명확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다. 지금의 안락하고 평온한 생활에 젖어 도전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루피는 그저 사서 고생을 하는 바보일 뿐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것을 논리라는 이름으로 짜 맞춰가며 기계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루피는 그저 억지를 부리는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피의 바보 같고, 억지스러운 그 소망은 동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나아가 제파의 기계 팔을 부숴버렸다.
제트에게 힘을 주는 한편 제파를 옭아매던 증오의 상징과도 같던 기계 팔은, <원피스>에서 누구보다 강렬하게 꿈을 소망하는 소년, 루피에 의해 부서졌다.
당신이 잘못 됐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 그저 좋을 뿐인 말과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누구보다 나 자신의 꿈을 소망하노라 말하는 한 소년의 생떼와도 같은 바람으로 인해 그의 증오가 풀어진 것이다. 그도 한때는 누구보다 강렬하게 정의를 꿈꾸는 소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광경을 보면서 아오키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파는 이 순간 증오의 정의를 집행하는 제트가 아닌 영웅을 키워내는 제파로 돌아왔다.
그렇게 패배한 제파는 밀짚모자 해적단과 자신의 수하들에게 벗어날 시간을 주고, 마지막까지 악당으로서의 책임을 지으러 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나는 제파의 마지막 행동이 '과거의 이상으로서 새로운 이상에게 그 존재 가치를 물으며 그 이상을 위한 장작으로 기꺼이 스러지는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까지가 <원피스 필름 Z>에 대한 내 생각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미디어 리뷰를 시작하면서 끝에는 꼭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적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뷰 2번째 만에 고비를 맞게 된 것 같다. <원피스 필름 Z>의 메시지는 뭘까?
꿈을 소망하라? 믿음을 갖고 나아가라?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아니, 이 영화는 거창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올곧게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자 했지만 꺾이고, 부서져 정의에 대한 울분을 외치는 '제트'라는 이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기에 내가 뭔 메시지를 붙이지는 못할 것 같다.
.. 분명 내 마음속에 있는 감정과 인상은 더 복합적이고,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아직 나의 고민과 통찰, 그리고 표현력이 부족해서 이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나의 마음에 대한 모욕이다.. 이 마음을 글과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을 통해 더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고 싶다.
그런 날을 꿈꾸며 오늘의 리뷰는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굉장히 은유를 잘 쓴 영화이기도 하고, 내가 따로 적지 않은 천식용 흡입기와 셰리 와인, 선글라스, 제파가 부르는 해군가 등의 상징도 많으니 시간 날 때 다시 한번 천천히 돌아보며 즐겨보기를 추천한다.
지금까지 이상을 꿈꿨던 제트라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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