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게 된 배경
이 책을 읽게 된 배경을 말하기 위해서 먼저 나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다. 운동을 해도, 공부를 해도, 그 무엇을 해도 지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내가 상대보다 더 뛰어나기를 원했고, 승리했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 좋았다. 그 때문일까? 무엇을 하든 금방 잘하게 되었지만 하나를 뛰어나게 잘하지는 못했다. 잘 해내다가도 벽을 만나면 '이것 말고도 다른 길은 많아. 이걸 할 바에는 다른 것을 할래.'라며 쉽게 포기했다.
이렇게 포기를 반복하니 나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나는 이제까지 자기 합리화를 하며 노력하지 않은 거야. ' 이제까지 같잖은 재능만 믿고 안락함을 위해 현실을 외면한 것 같아 괴로웠다. 그렇다고 이렇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우울하게 있기보다는 나 자신을 성장시키자고 그러면 언젠가 내가 그어놓은 한계를 넘을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성장을 내 안의 절대적인 가치로 삼고, 모든 선택의 근거를 성장에 두고자 했다. 내 삶의 중심이 성장이 되니 자연스레 날 성장시킬 기회를 찾아다녔고, 갖은 어려움을 헤쳐 성장하며 내 안에서 서서히 '고통=성장'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나 자신을 고양하기 위해 명언을 찾아보던 중 처음으로 니체에게 관심이 생겼다. "나는 불꽃처럼 스스로를 불사르고 있다. 내가 붙잡는 모든 것은 빛이 되리라! 내가 버리는 모든 것은 어둠이 되리라! 진정 나는 진정 불꽃이어라!"라는 명언이었는데, 오글거리기는 해도 중학생 때의 나에게는 확 와닿아서 한계 직전에 다다라 힘들거나 스스로 나태해질 때마다 되뇌었다.
그러다 어떻게 한 번 내가 한계라고 생각한 선을 보기 좋게 넘어선 순간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느꼈던 승리의 감각과 함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온몸이 충만했다. 이제 남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를 이겨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성장에 대한 나의 관념은 짙어졌고 나의 시련을 향한 사랑 또한 함께 깊어졌다.
물론 모든 순간이 이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난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슬럼프가 와서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예전의 명언이 생각나 '니체의 말'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는데 놀라웠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모습이었고, 내가 생각하는 자기 극복의 의지가 니체의 관점과 비슷했다. 물론 해설 없이 잠언만 모아놓은 책이어서 내가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해 버린 부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위인이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행복했다.
하지만 이때는 몰랐다. 내가 흔히 말하는 니체 뽕에 빠질 줄...
대학교 때 교양 강의에서 독서평론가분이 강의를 해주셨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번은 찾아가서 고통이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고통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답변은 '그 나이에 본인의 철학을 찾아간다는 건 대단하지만 너무 하나에 빠지면 안 된다. 하나만 보지 말고, 다양한 생각과 사람을 보라'였다. 아마 니체의 사상에만 빠져 본인을 잃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상을 보고 이야기하며 주체성을 가지고 나 자신의 철학을 꽃피우라는 의미에서 하신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금싸라기 같은 답변이었지만 이때의 나는 니체 뽕에 거하게 빠져있었기에 나중에 시간이 나면 본다며 쉬이 넘겨버렸다.
(아아.. 상원아.. 뭐 하는 거니..)
그렇게 내가 말하는 시간은 오지 않았고, 2019년 10월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정예공군으로 입대했다.
기훈단과 자대 배치 후 이병, 일병의 삶은 기존의 가치관으로 이겨낼 수 있었지만 상병이 될 때쯤 한계에 다다랐다. 업무에서는 조금씩 실수하는 게 나아지지 않으니 자신감은 떨어지고, 생활관에서는 한 기수 아래 친구랑 계속 트러블이 생기는 데다가 코로나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니 정신이 예민해지다 못해 너덜너덜해져 힘들었다. 뭔가 멍청해지는 것 같고, 몸은 축 늘어지고, 말은 꼬이고.. 전역 때까지 이러는 거 아닌가 싶어 고쳐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던 중 내 가치관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자신을 고양시키자는 목적으로 그동안 읽고 싶었던 '그대 자신이 되어라'를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나의 유년 시절을 대표하는 한 가지 단어를 고르라면 '성장'이요, 나의 유년 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니체'이기에 책을 읽게 된 배경에 나의 인생을 써 넣고 싶었다.
책 소개
'그대 자신이 되어라'는 니체의 잠언에 박찬국 교수님이 해설을 붙여놔서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니체 입문서로 좋다고 해서 구매했다. 이 책은 처음에 니체의 생애와 저작에 관해 간략하게 다룬 뒤 니체의 잠언을 13가지로 분류하여 묶어 해설했는데 각 장은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22개의 소주제를 다루고 있다. 소주제 해당하는 여러 잠언 뒤에 이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니체를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깨달음
1. 진리란 우리를 강화하는 무언가이다.
내가 생각한 진리는 삶의 기저이자 절대적이고 가장 작은 원리였다. 하지만 니체는 객관적 관점에서 진리를 바라보기보다는 한 인간의 관점에서 진리를 바라봤다. 니체는 진리란 생물이 자신의 삶의 유지와 강화에 기여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이 책이 현재 나의 삶을 강화한다면 지금 이 순간 이 책은 나의 진리인 것이다. 굳이 실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실재와 다르더라도 나의 삶을 위한 진리를 쫒는다는 개념은 나의 길에서 안개가 걷힌듯한 명료함과 직관을 얻을 수 있었다.
2. 나는 어느샌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잊고 있었고 이로 인해 삶이 힘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는 순간 약해지는 것 같다. 지능과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느낀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결여됐기 때문이고, 나의 긍지를 잊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주체성을 잃고 자신을 부정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닐까? 세상에 선과 악은 주관적인 것이지만 단 하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죄악이 있다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에 대한 사랑을, 긍지를 잊지 말자.
3. 나는 시련을 사랑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시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모든 일을 성장을 위한 시련으로 생각해 심각하고 진지하게 살아온 것 같다. 이제는 이런 태도를 놓아주려고 한다. 나는 아직 어리고 내 인생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아름다움과 기회를 시련으로 보아 유연하게 포용하고 즐기기보다는 이겨내고 정복한다는 느낌으로 접근하지 않았던가. 나는 과도한 자기 초극적 태도에서 느껴지는 괴로움과, 성장에 대한 사랑의 괴리로 인해 마모되고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 감내하고 관점을 유지한다면 난 철인은 될지언정 시인은 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즐겁고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삶의 신비함과 경이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나아가자. 초월 의지는 나의 무기일 뿐 나의 모든 것이 아니다. 가치에 지배당하지 말자. 가치의 주인은 나다.
4. 철학은 익히는 게 아니라 대화하는 것이다.
'그대 자신이 되어라'를 읽으면서 문득 '나는 니체의 사상을 그저 머리에 새겨 넣고 있는 게 아닐까?', '그저 굳어있는 교양이 되어 내 머릿속에 남아 허영심만 부추기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내린 결론은 그냥 책을 읽기보다는 책을 통해 과거의 위인과 대화한다는 관점으로 생각하고 글의 주장을 비틀어보자는 것이다.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썼고 어떤 것을 말하고자 했는지 대화하듯 읽는다면 훨씬 가치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쓰고 나니 당연한 것 같지만 이 당연한 것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했다.
5. 신념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신념의 주인이 되어라.
박찬국 교수님은 니체는 자신의 사상마저도 특정한 사람이 성장을 위해 가지고 놀다가 그의 성숙을 저해하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할 장난감으로 생각한다고 해설했다. 이를 보며 나는 니체의 사상을 영원한 진리로 여겨 고집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성장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듯 나는 정신이기를 포기하고 굳어버렸던 것이다. 신념의 주인이기를 포기하고 노예가 되었으니 추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신념의 주인이 되자. 지금 또한 책과 대화하며 자유롭고 사고하는 유연함을 배웠고 이게 지금의 나를 보다 고귀하게 이끌기에 나의 진리라고 할 수 있겠으나, 미래에 이 진리가 나를 보다 고귀하게 바꿀 수 없다면 이를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6. 유희하듯이 살자.
박찬국 교수님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매 순간순간을 영원의 무게를 갖는 것으로 살 것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인생의 가치는 연명의 길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한순간이라도 생명력 있게 살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슬퍼하고 우울하기보다는 세상을 기꺼이 즐거움으로 마주하자. 우리는 삶을 통해 유희하며 창조적이고 초월적인 본래적 자기, 디오니소스에게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
니체는 인간 이상의 인간, 고독하며 초월적인 존재, 신으로서의 인간을 추구한 것 같다. 고독하며 전통을 거부하는 초인의 모습, 나의 이상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보다 극단적인 형태이다. 이에 대해 처음에는 니체와 나의 관점을 비교하여 어떻게 달라 아쉽다고 말하려 했으나 지금과 과거의 사회상을 다르기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외로운 사상가가 자신을 우상화하여 자신의 반사회적인 성향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그는 정신의 개척자요, 인간의 해방자였다. 어쩌면 내가 비판하려고 했던 건 내가 니체에게 투영한 과거 초월에 집착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유이하게 아쉬운 점은 여성을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과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사상에 대한 꺼림칙함이다. 박찬국 교수님에 해설해도 나와있듯이 여성에 대한 점은 당시의 사회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해석에 대해 검토해볼 여지가 있기에 넘어간다고 해도, 특유의 꺼림칙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극단적인 급진주의자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현대에 살고 있으며 어느 정도 니체의 사상에 동조된 나조차 이러한데 당대 사람들에게 니체가 어떻게 보였을지 절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니체를 위대한 정신의 스승이라고 부르겠다. 난 나의 유년시절을 이끌어주고 나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준 니체가 여전히 위대하게 느껴지며 그를 알게 된 내가 자랑스럽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한 그는 언제나 나의 스승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나 같은 제자 둔 적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ㅋㅋ)
소감
'그대 자신이 되어라'은 나의 인생에서 하나의 변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서점에서 흝어봤을때는 '이게 뭐야'라고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매력 있고 고양될 수 있었다. 니체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나의 진리가 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즐겁고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명료하고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 발음 연습을 시작했고, 책을 읽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소화시키기 위해, 더욱 깊게 향유하기 위해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평을 쓰려고 했으나 나에게는 아직 독후감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독후감을 쓰는 과정에서 책을 여러 번 다시 보고, 생각하며 사유하는 능력을 함양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읽으면서 즐거웠고 인상적이었던 책은 독후감으로 여기에 기록하려고 한다. 자의에 의한 독후감은 거의 처음이라 두서없고 중고등학생 독후감 같이 미숙하긴 하지만 계속 쓰다 보면 차차 좋아지지 않을까? 언젠가 나도 다른 사람들의 의지를 고양시킬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에 철학에 관심이 생겨 입문하기 위해 알아보다가 철학사부터 읽어보고 관심 가는 책 하나를 읽어보거나, 이를 역으로 해보라는 글을 보았다. '시간 나면 해봐야지'가 몇 년을 이어져 이제야 읽게 되는 것 같다. 다음 책은 '소피의 세계'이다. 소설로 철학사를 접근하기에 조금은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괴롭고 힘들었는데, 책을 읽고,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니 삶이 충만하다. 무엇보다 내가 그토록 바라오 던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행복하다.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된 모든 분들이여, 오늘 하루를 즐겁고 충만하게 보내기 바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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