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오랜만에 글을 연다. 오늘은 2024 GCON, 그러니까 올해 지스타 컨퍼런스에 갔다가 방금 막 올라왔는데, 문득 최근 현생을 핑계로 블로그에 소홀했던 것 같아 짧게나마 글을 남긴다.
오늘은 간단하게 지난 2달 동안 무엇을 했고, 어떤 걸 느꼈는지 이야기한 뒤, 마지막으로 나라는 기획자에 대한 짤막한 평가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기획 미팅
작년 8월 말부터 약 2~3달 간격으로 연락하는 기획자분(이하 P님)이 있다. P님과의 미팅은 처음에는 기획적인 인사이트와 자료를 공유하고자 시작한 미팅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근황 보고가 되어버린 그런 미팅이다😅.
이번 10월 초에도 어김없이 만나 뵀는데, 미팅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Lib's Rarry> 프로젝트, Cel Shading 간단하게 해 본 것, 파이썬으로 밸런싱 기준 찾아본 것 등 이런저런 활동을 말씀드리고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말씀드렸다.
이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셨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상원님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이건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취업을 하려면 게임을 하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보세요.
이건 처음 말씀하신 게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일정을 핑계로 매번 게임과 포트폴리오는 후순위로 밀어 두고 다른 일만 찾아다녔다.
어쩌면 작년 근황 글에서 언급한 본질에 대한 회피 성향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걸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취업에 절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목표는 졸업하고 25년 하반기에 취업하는 것이었기에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고, 이 기간이면 졸업과 함께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은 뒤,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당장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시야를 넓혀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기획자의 본질을 망각한 채 게임 플레이와 포트폴리오에 소홀했다.
이 뒤에는 부랴부랴 게임 시간을 늘렸다. 사실 일부러 게임 시간을 늘렸다는 것부터 즐기는 게 목적이 아니게 돼서 방향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내 입장에서는 이 외에 게임에 끌릴만한 이유가 없어서 일단 시작하고 이후에 재미를 찾아보고자 했다.
게임 플레이
위에서 비장하게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시작했다고 말하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하던 게임 말고는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이번 항목에서 특별한 건 없고 어떤 게임을 했고, 왜 그만뒀는지, 마음에 드는 게임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다뤘으니 간단하게만 살펴보자.
가장 먼저 <Lost Ark>(이하 로아)다.
로아는 나름 열심히 했다. 예전에 현질해서 각인 33333 만들어놨던 게 무가치해지긴 했는데, 뭐 내가 쉬었던 거니까 그러려니 하고 플레이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플레이하다 보니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보다 피로감이 커서 접었다.
레이드를 재미있게 하긴 했는데, 군단장 하나를 돌고 나서 다시 돌아보고 싶어도 같은 캐릭터로는 입장 자체가 안 돼서 불편했다. 그렇다고, 군단장 한 번 더 돌자고 배럭을 만들자니 귀찮고, 결국 남는 시간에 카던, 카게, 가디언, 에포나 돌고 퀘스트만 밀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할만했는데 한 달 반복하니까 그냥 재미가 없었다.
결정적인 건 베른 남부에서 하이거의 저택을 왔다 갔다 하는 퀘스트를 했는데 이게 꼭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바로 꺼버렸다. 추가로, 4주가량 출석과 일일 1시간 접속 이벤트로 전설 카드팩을 받았는데 거기서 아예 쓸모없는 전설 카드가 나오니까 더 이상 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로아에 대한 관심사는 뒷전이 됐다. 간간이 떠돌이 상인 알람을 받고, 남겨진 바람의 절벽 카드를 모으는 것 외에는 따로 접속을 하지 않고 있다.
다음은 <GUILTY GEAR -STRIVE->(이하 길티기어)다.
군대 복무할 때 나갈 일 생기면 생활관 사람들이랑 철권이나 나루티밋 스톰을 하면서 놀기도 했고, 프레임 계산하는 게 신기해서 시작해 봤다. 결론은 튜토리얼 쭉 돌리고 트레이닝으로 콤보 연습만 하다가 다른 게임한다고 묵혀두게 됐다.
결국 프레임 개념을 이해하는데만 활용하고 말았는데, 연습을 어느 정도 했으면 바로 대전으로 가서 맞으면서 배웠어도 좋았을 것 같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게임이 생겨서 따로 해 볼 생각은 없으나, 언제가 됐든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 한다.
다음은 <Zenless Zone Zero>(이하 젠존제)다.
젠존제는 액션도 액션이지만 캐릭터성을 살리는 전투 연출을 되게 잘해서 감탄하면서 했던 게임이다. 전투만 있었으면 계속했을 것 같은데, 전투에 대한 기대가 해소되기도 전에 스토리랑 TV로 탐험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마찬가지로 묵혀두고 있다.
이건 그래도 조만간 다시 할 것 같다. (24.11.17 퇴고하다가 갑자기 끌려서 다시 시작했다 😄😄)
마지막은 내 인생 게임이 되어버린 <Sekiro™: Shadows Die Twice>(이하 세키로)다.
세키로는 8월 초에 시작했던 게임이었다. 초반에 적귀를 잡고 좋아하다가 길 찾기 때문에 잠깐 폐사했었는데, 9월 말에 소울라이크를 좋아하는 지인이 도와주겠다고 해서 다시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다시 시작하긴 했는데 처음에는 인생 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저 계속 트라이하다가, '오늘도 어떻게든 잡았다..'라며 짧은 성취감을 느낀 뒤 종료하는 그런 게임이었다.
그런데, 한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세키로 인생이 달라졌다. 바로 이 분이다.
겐이치로 전투에서 4시간 동안 머리 깨져가면서 고생했는데, 이때 세키로의 문법을 확실하게 배웠다.
이전까지는 체력이 줄어들수록 체간 회복이 느려지는 것도 몰랐고, 그냥 공략한다는 개념 자체에 미숙했는데 겐이치로 전에서 계속 트라이를 하면서 패턴에 익숙해지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투가 어떻게 흘러가고, 어느 타이밍에 딜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적의 패턴을 유도할 수 있고, 어느 타이밍에 물약을 마셔야 하는지 등 이런 선택지들이 느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공략하는 재미를 깨닫게 됐다.
이렇게 겐이치로를 클리어하고, 이후에는 특별한 어려움 없이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엔딩보고, 고영 도당 창족 마사나가를 제외한 모든 보스와 미니 보스를 다 잡기까지 했다. (마사나가는 있는 줄 모르고 진행해버려서 2회차 때 잡으려고 한다.)
세키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더 말하고 싶지만 근황 글이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짓고 넘어가려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세키로에 대해 여러 편에 나눠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다.
그럼 게임 플레이에 대한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의도대로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지는 못했지만, 게임 플레이에 대한 흥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세키로 엔딩을 보고 난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게임 플레이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건, 게임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게임이든 무언가를 플레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그 문법을 이해하고 내 속에서 확장할 필요가 있는데, 게임이라며 별생각 없이 내가 평소에 하던 방식을 밀어붙이기만 하니 게임에 담긴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아직까지 아리송하다. 지금은 세키로 이후에 하고 싶은 게임이 생겨서 흥미대로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Lost in Hope> 미팅
오랜만에 예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인 <Lost in Hope>의 사람들을 만났다. 몇몇씩 종종 보기는 했지만 전부 모이는 건 프로젝트 종료 이후 처음이었다.
다들 만나서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 졸업하지 못한 나와 아트 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현업자라 그런지 분위기가 새로웠다. 이에 대해서 그냥 즐겁게 즐긴 걸로 마무리 지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 플머분이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너네 게임하려고 휴가 써본 적 없어? 게임 업계에 진심인 사람들 진짜 많아.
당시에 <Monster Hunter Wilds>의 OBT가 열리기 며칠 전이었는데, 플머분께서 이거 때문에 휴가를 썼다는 말을 하며 나온 이야기였다.
이때는 P님과의 이야기로 한창 게임 플레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게임 개발에 진심이 아닌가?
뭔가 열심히 하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인지 부조화가 오는 느낌이었다. 뭔가 몇 년간 헛고생한 느낌..
나는 분명 게임 개발에 재미를 느끼고 있고, 게임 플레이에 대한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내가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면 팀에서 협업을 하면서 그들의 경험으로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협업이란 나의 강점과 동료의 강점을 더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분명 이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 당시의 모든 사람이 나의 게임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뭔가 잘못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임에 흥미를 붙이기 어려울 뿐, 싫어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나름대로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것 자체가 잘못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기획자가 되면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플머분의 말 한마디로 이런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동안 쌓였던 의문이 이때 터진 것 같다. 집에 돌아가면서 되게 많은 고민을 했다.
겉으로는 별 거 아닌 일이었지만, 속으로는 나름 큰 이벤트였기에 이렇게 적어봤다.
사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조금 망설여지긴 한다. 내가 했던 고민 중에는 '말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전달되지 않기에, 내가 기획자로 살아가기로 한 이상 게임에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밝히는 이유는 숨기는 순간 진짜 약점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계속 의심하게 되지만 나는 여전히 게임을 만드는 게 즐겁다. 좋은 기획을 하고 싶고, 내 기획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내 게임 플레이 경험이 방해가 된다면 마땅히 해결해야겠지. 분명 해결될 거다.
<Lib's Rarry> 게임 디자인
다음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지난 달인 10월 말, <Lib's Rarry>의 시스템에 대한 기획이 끝났다. 원래는 시스템 기획 이후에 노션에 파편화된 기획을 보고 관리하기 좋게 하나로 묶으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이대로 괜찮은가? 정말 우리 게임이 플레이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작업자 분들의 작업이 끊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빠르게 기획을 마무리 지었는데, 작업자분들의 속도를 볼 때 여유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팀원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획을 개선해 봐도 될지 여쭤봤다.
다행히도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셔서 기존 시스템에 호응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시작했고, 현재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개선에 대한 내용도 마찬가지로 상황이 정리되면 따로 글로 정리하려고 하는데 간략하게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기존 메커닉이 어떤 경험을 낳는지 정리
- 동일 장르 시장 리뷰
- 차별 방향성 정의
- 기존 메커닉 개선 및 신규 메커닉 설계
- 프로토타이핑 (피드백, 개선의 반복)
이제 자정이 지났으니까 오늘, 오늘 회의에서 다른 팀원들이 테스트를 진행할 텐데 반응이 좋았으면 좋겠다.
GCON 2024
최근 근황의 마지막은 지스타 컨퍼런스다. 지스타 컨퍼런스는 게임 기획자를 꿈꾸기 시작한 2021년 이래로 매년 참가 중인데, 항상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돼서 이번에도 참가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혼자 참가했는데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더 감상, 정확히 말하면 회한에 젖은 채 강연을 들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 성장 방향성에 대한 질문들이 들어오는 시기에 컨퍼런스에서 대학생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연사자분들이 강연하는 것을 보니, 자연스레 연사자 분들과 나와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내가 말하는 '열심히 한다'는 것은 그저 과정에 불과할 뿐, 결과로 증명하여 연단에 선 연사자 분들과, 증명하지 못한 나 사이의 괴리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꾸준히 작성했던 블로그 글들, 휴학까지 하며 진행했던 여러 팀 프로젝트들,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 시도했던 다양한 활동들.. 정말로 이 모든 것들에 의미와 가치가 있었을까?
과거의 나라면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주체인 너부터가 네 스스로를 의심하는데 누가 그 노력을 알아줄까?
축적과 발산, 의미 없는 노력이란 존재하지 않아.
그저 꾸준히 쌓고, 쌓고, 또 쌓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딱 축적한 만큼 발산할 수 있을 거야.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득 '좋은 말은 좋은 말일뿐. 현실은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인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과정을 드높인다고 한들 결국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스스로를 증명한 결과뿐이다. 증명하지 못한 과정은 잠시 한 줌의 위로는 받을지언정 점차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증명하지 못한 과정은 무가치한가? 포기한다면 그렇겠지. 그럼 포기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나는 계속 기획이 하고 싶다.
결국 돌고 돌아 원점이다. 답은 없다. 그냥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다시 답을 찾기 위해 나아가야 할 뿐이다. 내가 개선해야 하는 부분은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기준을 고집하기 이전에 세상의 기준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의 나는 외부와 상관없이 내가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중요시하며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는데 유저를 위한 게임을 만드는 기획자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더 쉽게 생각해 보자. 나는 어쩌면 기획을 너무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나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기 이전에 재미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자.
지금처럼 의심하되, 꾸준히 나아가보자.
마치며
오늘은 이렇게 근황을 주제로 글을 써봤다. 오랜만에 글을 적어서 그런지 어색함도 크고 글도 잘 써지지 않는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이 글을 접할 독자들에게 잘 전달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 최근의 고민들은 위에 다 적어놨으니 이번 글은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나라는 기획자에 대해 짤막한 평가를 내리며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나는 눈이 먼 채 길을 찾는 기획자다.
바로 앞에 길을 두고, 태양만 바라보다 눈이 멀어버린 그런 기획자다.
그러니, 네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하고 싶다면 이제는 눈을 떠야 돼.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90일, 밥솥 프로젝트 시작 (0) | 2025.03.22 |
---|---|
한 달 늦은 2024년 연말 회고 : 단조 (鍛造) (6) | 2025.02.13 |
2024 한국 공학 대전 후기 (feat. Breath in Winter) (하) (3) | 2024.09.30 |
2024 한국 공학 대전 후기 (feat. Breath in Winter) (상) (2) | 2024.09.30 |
<Sekiro™: Shadows Die Twice> - 적귀 CUT (0) | 2024.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