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잼 신청
'OVERTALE' 은 내가 재학 중인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의 게임 제작 동아리이다. 전역 전 복학을 준비하며 알게 된 동아리였는데, 이번에 7월 23일부터 26일(하루는 예비 시간)까지 2박 3일간 게임을 제작하는 대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참가를 결정했다.
개발자와 기획자 중 고민을 해봤는데 개발자 역할의 경우 책을 보고 몇 가지를 게임을 따라 만들어봤을 뿐 아직 팀에서 개발자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모자람이 많다고 생각했다. 대신 개발 과정에 대한 이해와 그림을 그려본 경험을 살려 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나는 기획자 역할로 게임 잼에 참가를 신청했다.
불안한 시작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어 게임을 제작하는 대회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약간은 긴장되기도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했는데 시작부터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3인 1팀으로 알고 있었는데 참가자는 애매하게 19명이었고, 그중 디자이너는 단 2명이었다. 심지어 디자이너 한 명은 미리 팀을 이루고 와서 사실상 디자이너와 같은 팀이 되기를 기대하는 건 힘들었다. 운영 규칙 또한 한 번에 정리해서 공지한 게 아니라 다소 난잡한 느낌이 들었는데 개회식과 그 이후, 참가자 문제와 운영 규칙에 대해 깔끔하게 설명해 주셔서 뒤늦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Team SIMPLE!
팀이 구성되었다. 우리 팀은 한 명의 개발자와 두 명의 기획자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개발자 분이 팀장을 맡게 되었고, 우리 팀의 이름을 고민하던 중 개발자님의 '심플하게 가죠.'라는 말에 'SIMPLE'로 결정하였다. 우리 팀의 제시어는 '이세계', '허수아비', '카드' 였는데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서 즐거웠다. 역시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기획 방향을 굳혔다.
기획자란?
나는 기획자에게 딱 하나, 가장 중요한 능력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역할에 대한 이해'를 선택하겠다. 물론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기에 혹자는 통찰력 혹은 소통 능력을 선택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획자의 역할은 규격, 개발 방향, 일정과 같은 것을 정의하여 팀에서의 오해를 최소화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통찰력과 소통 능력 또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역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타 직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현실성 없는 기획을 하게 된다. 개발자에게 개발 후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서 구현이 어려운 혹은 불가능한 개발을 요구하게 되고, 디자이너에게 의미 없는 작업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러한 행동은 팀의 사기와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곧 프로젝트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기획을 할 때 항상 개발 여건을 고려했고, SIMPLE 팀에서도 그러고자 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세부적인 내용을 기획하려는 팀원분이 계셔서 살짝 난처했다. 아마 첫 참가에 신이 나셔서 그런 것 같은데 나중에 팀장님이 이야기가 새는 것 같다며 한 마디 하실 때 나에게도 뭐라고 하셔서 약간 슬펐다..
이 갈고 쓴 시스템 기획서
솔직하게 화가 났다. 팀원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상황 자체에 화가 났다. 지금 이 상황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첫 번째, 기획자 둘 다 팀에 어떻게 기여를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기획자들 모두 첫 참가이다 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한 것인데도 이 최선이 팀에게 무의미했다. 두 번째, 기획에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 명확한 이미지를 가지고 제대로 된 기획을 하면, 개발자가 이것을 기준으로 기획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것인데, 나는 이 이미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하나의 게임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세 가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의견은 겉돌고, 오해는 쌓여만 갔다.
그래서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시스템 기획서라는 것을 작성해 보기로 했다. 이게 팀에 기준이 되어 말이 겉돌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식사도 미루고 작성했는데,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진 못했어도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서 안심했다. 다만, 기획 의도까지 적어가며 열심히 만들어 올렸는데 개발자분께서 확인을 안 하신 건지 아무 말도 안 하셔서 서운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그 뒤로는 내가 기획자인지 디자이너인지 헷갈릴 정도로 계속 도트만 찍었다. 이때 디자이너의 소중함을 정말 절실히 느꼈다. 세상의 모든 디자이너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게임 잼에 참여하기 전, 나는 만능형 기획자, 즉 기획은 기본에 개발도 할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기획자를 지향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이게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어느 정도 도와줄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수는 있지만 기획에 지장이 갈 정도가 되면 안 된다. 나의 본분은 기획자임을 잊지 말자.
팀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 팀을 결국 시간 내에 게임을 완성하지 못했다.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고 엔딩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저 허울뿐, 게임 곳곳에 버그가 있었고, 제작 전 기획했던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여 UI 만 존재하는 부분도 있었다. 게임 잼 후에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을 해봤다.
첫 번째, 팀원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했다. 같은 직군이더라도 개발 방식과 생산성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느리지만 유지 보수가 가능하고 안정성이 뛰어난 개발을, 누군가는 불안정하지만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개발을 한다. 그렇다면 이 팀원의 스타일과 개발 역량을 빠르게 파악해서 계획을 세우고 기획을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나는 팀원의 개발 방식보다는 나의 기획에 초점을 맞추느라 팀원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했다.
두 번째, 개발 과정 도중 하고 있는 일과 진척을 물어보지 않았다. 팀 단위 협업을 하고 있다면, 기획자 입장에서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일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파악하는 작업은 정말 중요하다. 이 작업을 통해 계획을 조율하여 제한 기간 내에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처음 만난 팀원에게 신뢰와 예의를 핑계삼아 하고 있는 일과, 이의 진척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어떻게든 팀원을 신뢰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협업에서 하고 있는 일을 물어보는 게 예의 없는 행동은 아니다. 신뢰와 무관심함은 다르니 구별하도록 하자.
이외에도 내가 찾지 못한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위의 2 가지라고 생각했다. 다음 팀 협업을 진행할 때에는 신중하게 팀의 이점을 살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해보자.
멘토링
게임을 제출한 후 각 팀은 멘토분들께 배정되어 멘토링을 받았다. 우리 팀은 데브시스터즈 글로벌 고객 확장 그룹의 문승현 멘토님께 배정되었는데, 게임에 대한 멘토링보다는 게임 업계 취업에 대비하여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조언을 해주셨다. 혼자 인터넷에서 검색해가며 찾아가는 것보다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후기
첫 참가여서 그런지 즐거웠지만 모자란 부분이 많이 느껴졌다. 모자람이 많이 느껴진 만큼 배운 부분도 많고, 멘토분들의 피드백을 통해 내가 집중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게임 잼에 참여하기 전 게임 기획자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불안함에 헤매는 느낌이었는데 어느 정도 나아갈 길을 알 게 된 것 같아서 의미가 있는 참가였다. 다음 오버테일 게임잼에는 1등을 목표로 참여할 계획이다. 아마 올해 12월 혹은 내년 1월쯤 개최될 것 같은데 그전까지 나의 모자람을 보완하고 준비해야겠다.
+)
2023.06.29 추가
21년 8월 말, 교내 게임잼 이후에 해당 프로젝트를 리메이크해 봤습니다. 프로젝트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세계 허수아비 리메이크
프로젝트 기간 21.08.22 ~ 21.08.28 프로젝트 동기 '이세계 허수아비 리메이크'의 원작인 '이세계 허수아비'는 21년 7월에 기획으로 참여한 오버테일 하계 게임잼에서 만들었던 게임이다. 당시 이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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