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는 본격적으로 게임 기획을 시작한 지 1년이 된 초짜 기획자이다. 최근에 나의 첫 프로젝트였던 <뚜두 농장>이 잠시 중단된 이후, <Lost In Hope> 라는 프로젝트에서 팀장이자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Lost In Hope>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제안하며, 개인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2가지인데, 첫 번째는 '팀원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함'이고, 두 번째는 '방향성을 잃지 않는 확고함'이다. 다행히 좋은 팀원 분들을 만나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지만 늘 그렇듯 내가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떠나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은 이런 고민들을 정리하기 위해 내가 어떤 기획을 추구하는지 몇 자 끄적여보고자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우선 내가 어떤 기획을 추구하는지 정리하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했고, 어떤 것을 좋아하며, 왜 기획을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글에 나의 성장 연대기를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내가 '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문장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고자 한다.
내가 나를 생각해봤을 때, 아래와 같이 총 13개의 문장이 나왔는데, 그중 나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 문장은 제일 위에, 그리고 서로 연관 있어보이는 문장끼리는 좌우로 엮었다. 신기하게도 직관적으로 떠오른 것들인데 마구잡이로 나열하다 보니 어떠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어서 이렇게 정리해봤다.
나는 길을 찾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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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장들을 살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적인 이미지가 그려질 것 같다. 그럼 이렇게 그려진 '박상원'이라는 이미지를 조금 더 확실히 하기 위해 나를 압축한 문장들을 한번 더 압축하여 키워드로 나열해보자. 내가 생각하는 나의 키워드는 아래와 같다.
고민, 성장, 그리고 이상
이쯤되면 내가 왜 게임 기획자를 희망하는지 감이 올 거라 생각한다. 항상 새로운 문제들을 직면하기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통해 성장해내며, 마침내 종합 예술이라고도 불리는 훌륭한 전달 수단, 게임을 통해 어떠한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삶. 낭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게임 기획자라는 꿈을 꾸고, 그 꿈에 내 삶을 바친다.
기획이란 무엇인가?
이전 항목에서 '나는 어떤 기획을 꿈꾸는가?'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나'에 대해 알아봤다면, 다음으로 '기획'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기획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국어 사전에서는 기획을 '일을 꾀하여 계획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일을 '꾀'하여 '계획'하는 것. 정의한 문장을 개발에 맞게 풀어보면 '개발 상황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해결 방법을 찾아 계획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획에 대한 또 다른 정의는 내가 기획을 처음 할 적에 작성한 [일상] - 오버테일 2021 하계 게임잼 참여 후기 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획자의 역할은 규격, 개발 방향, 일정과 같은 것을 정의하여
팀에서의 오해를 최소화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1년 동안 기획을 했는데 '이 생각은 그대로인가'라고 묻는다면 '예'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저 시절의 나는 신기하게도 이것저것 많이 찾아봤는지 지금의 나도 납득이 가도록 정의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이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단어에서 떠올리는 깊이감 정도인 것 같다.
과거에는 멋도 모르고 규격, 개발 방향, 일정이라는 말을 썼는데, 지금의 나는 이를 게임의 볼륨, 방향성, 개발 계획이라고 해석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시행착오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헛된 1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각설하고, 이야기가 샜는데 이 2가지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기획이란 길잡이이자 윤활유 같은 역할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기획을 처음 접할 적, 기획을 어렵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기획자를 희망했던 이유는 애초에 정리하고 계획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발과 아트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적성과 타 직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획을 하면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었고, 이렇게 기획을 시작했다.
AeonFlor - Overview
AeonFlor has 13 repositories available. Follow their code on GitHub.
github.com
이전에 그렸던 것들 정리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나는 대학교 2학년 1학기 이후, 그러니까 2019년 7월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지금과 같이 욕심이 많았지만 그걸 통제하지는 못했다.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memoria-aeon.tistory.com
하지만 실제로 해 본 기획은 생각과 너무 달랐다. 그저 하는 것 자체는 쉬웠지만, '잘' 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고, 타 직군 대한 경험은 활용하기도 어려웠으며, 무엇보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프로그래머의 경우, 잘못했을 때 코드 에러가 나서 실행조차 하지 못하거나 처리 속도가 너무 늦어지는 것과 같이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 여부를 본인이 한 작업의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아트나 사운드의 경우, 결과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에 이를 보며 자기 피드백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획자의 경우, 개별적으로 존재하여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고, 대부분 다른 요소들과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동작하기에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출시해보고 운영하며 유저들의 반응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가 느낀 바로는 자신이 기획을 잘하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어려운 것 같았다.
이에 대해 팀 내에서 테스트를 진행해보거나, 베타 테스터들을 모집해 피드백을 듣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이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많이 소모될뿐더러 테스트에 참가한 모집단의 의견이 반드시 전체 유저들의 의견과 일치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기에 실제 결과는 출시 이후 유저들의 반응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어 보였다.
물론 기획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 잘 안다. 프로그래머를 비롯한 다른 직군의 개발자들도 직군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저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1년 동안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기획에는 답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책들을 보고, 컨퍼런스를 다니며, 다양한 기술들을 공부했지만 아직까지 '기획을 잘한다'라고 말하기에는 멀고도 멀게 느껴진다.
솔직히 지금 와서는 기획과 고민은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고민하지 않는 기획이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고민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지만 한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 기획은 고민하는 것.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마침내 모든 노력이 하나의 결과로 수렴하도록 이끌어내는 것. 나는 이게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기획을 꿈꾸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불확실한 도전 속에서 확실함을 쌓는 기획'을 꿈꾼다.
얼마 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며, 창의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확실에 대한 도전이다.
- 디아블로의 개발자, Bill Roper -
디아블로의 개발자였던 Bill Roper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보며 '불확실에 대한 도전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나에게는 그 방법이 확실함을 쌓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게임을 개발하다 보면 수많은 모호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무슨 작업을 해야 할지부터 시작해서, 유저에게 어떤 경험을 전달할 거고, 이를 어떻게 표현을 할 것인지, 비단 개발뿐만 아니라 어떻게 수익을 벌고,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 등 게임을 개발하는 우리는 수많은 모호한 문제를 마주한다.
나는 이런 불확실하고 모호한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써 확실함을 쌓길 바랐다. 혹자는 당연한 말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당연하지 않다. 불확실함 속에서 확실함을 쌓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철저하게 조사하고, 분석하여, 직관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이를 가공하여 팀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야 한다.
확실함을 쌓는 방법은 다소 불확실하더라도 빠르고 유연하게 진행할 수 있는 이전의 방법과는 확실히 다르다. 긍정적으로 동작하면 확실함을 바탕으로 운영 과정에서 더 원활하게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고, 게임 자체의 성공 확률도 크게 증가하겠지만, 능력과 노력, 개인의 성품 등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팀원 또한 괴로우며, 성과는 성과대로 안 나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노력, 부족한 능력은 노력으로 보완하고, 팀원을 포용하고 리드해야 할 성품은 팀원들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해야 한다.
현재 시점의 나의 능력과 노력, 그리고 성품.. 나는 확실함을 쌓자는 나의 기획 철학에 가능성을 느꼈으나 아직 완벽히 해내기에는 이른 것 같다. 부족함을 느끼는 만큼 노력하자. 이게 기획의 전문성에 대해 고민하던 나의 해답이 될 것이다.
마치며
이번에 처음으로 팀장이 되면서 생각이 많다. 혼자만 잘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팀을 이끌 무언가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까지는 '인간 박상원'이었다면, 이제는 '리더 박상원'을 찾아야 하는 느낌이다.
물론 혼자 괜히 필요 이상의 부담감을 느끼고, 설레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난 이 고민이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조금은 더 깊고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
사실 어떤 기획을 하고 싶냐는 질문은 이번에 나온 게 아니다. 이전에 문득 '기획자에게 전문성을 찾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어 고민을 한 적이 있다.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코드로, 아트나 사운드는 자신의 작업물로 각자의 전문성과 필요성을 증명한다. 그럼 기획자는 무엇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해야 할까?
기획서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코드, 그림, 음악, 그리고 기획서 중에 무엇이 더 만들기 쉬워 보이는지 생각해보자.
이런 이유로 나는 나의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를 느꼈고, 수많은 고민 끝에 그 방법으로 '확실함'을 선택했다. 물론 '타 직군에 대한 이해'를 비롯하여 각양각색의 전문성이 있겠지만, 일단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함'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택한 방법에 대한 기대를 하며 잘 해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문득 '이 방법이 실패하면 난 무엇을 해온 게 되는 걸까'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래서 궁상맞게 방구석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늘 그렇듯 글로 생각을 갈무리해봤다.
글의 보는 당신 혹은 미래에 글을 읽는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올리며 글을 마무리 짓겠다.
당신은 어떤 기획을 꿈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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