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생각이다. 어린아이는 누구나 자신을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여긴다. 아이를 둘러싼 세상은 아이에게 한없이 호의적이고, 아이는 그런 호의를 즐기며 세상을 자신의 무대로 바라본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흘러 내가 별거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될 때, 무엇보다 그런 깨달음이 한 순간만이 아닌 어른이 되어가는 매 순간,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거라는 것을 직감할 때, 아이는 자신을 위한 무대를 잃는다.
무대 밖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들은 다시금 무대에 오르고자 세상이 말하는 특별함을 추구한다. 능력과 재물, 외모와 매력 등.., 아이들은 순수함을 대가로 특별함을 구매하고 자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작은 존재감에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존재감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빠르게 휘발되고 그 자리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공허함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런 공허함을 마주한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의 무대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짧은 충족감 후에 마주할 공허함을 피하고자 계속해서 자신의 순수함을 내던질 뿐이다.
나는 이게 싫었다. 나는 짧은 특별함에 취해 순수함을 팔지 않겠다고, 나는 생애를 비출 나만의 특별함을 찾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나 또한 여전히 인정을 갈구하는 아이들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순수함을 위해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목적도 없이 특별함만을 추구하는 것인가?
항상 하게 되는 고민이다. 지금까지 부단히, 아니 부단히라는 표현은 지우고, 어찌 됐든 나는 나아가왔는데.. 이러한 나아감은 무엇을 위한 나아감이었을까? 나의 순수함이라고 여겼던 것은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고야 마는데 이런 순수함이 정말로 삶을 비출 수 있는 걸까? 무엇보다도 나는 정말로 나아가고 있는 게 맞나?
내가 하루에 집중하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4-5시간 남짓, 물론 끊임없이 이어왔다고는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에 대해 이야기해 볼만한 어구가 있는데, 어디선가 불안에 대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불안은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것이다.
맞다, 나는 더 빨라질 수 있는데 게으름을 피웠기에 불안함을 느끼는 것인 것 같다. 더 빨라질 수 있음에도 '이 정도면 되겠지',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빨라지겠지'와 같은 말로 나 자신의 게으름을 합리화했을 뿐이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알게 되면', '조금 더 성장하면'이라는 핑계로 나아가기를 거부해 왔던 것이다.
물론, 정말로 잘 나아가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여전히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더 빨라져야 한다. 나의 순수함을 위해서라도 나는 더 빨라져야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 순수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나의 순수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결국, 나는 계속 꿈을 꾸는 사람이고 싶다. 쓸모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함께하는 사람이길 바라며, 그렇게 나아가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쓸모라는 표현에 동정하진 마라. 어려운 일을 해내고, 누군가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도전을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는 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이게 내 삶의 순수함이다.
남들처럼 특별히 만들고 싶은 게임은 없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순수함을 되찾아주는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긴 하다. 이를 위해 전투 디자이너가 되고자 했다. 순수함을 되찾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경험해야 하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가치 구조 위에서 선택과 피드백이라는 상호작용을 이끌어내야 하며, 이러한 상호작용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 직관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 액션과 전투이기 때문이다. 이게 내 업의 순수함이다.
결국 나는 나의 순수함을 간직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이 가진 순수함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어른의 순수함을 가장 좋아한다. 물론 어린아이의 순수함은 분명 찬란하다. 하지만, 이보다는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알면서도, 더 편하고 쉬운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특별함을 위한 길을 나아가는 어른의 순수함, 어렵고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을 걷고야 말겠다는 어른의 바보 같은 순수함이 정말 좋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런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더 빨라져야 한다. 특별함을 얻으면서도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나는 아직 그 대가를 준비하지 못했다. 대가 없이 특별함과 순수함, 모두를 지키고자 하는 건 망상이기에 나는 대가를 준비해야 한다.
나의 순수함은 망상인가 실제인가? 그걸 증명하는 건 나의 행동이다. 기약 없는 가능성에 대한 중독에서 벗어나 나아가자. 쉬운 길은 아니기에 계속해서 가속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가속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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